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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 밤의 강에는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21


정오 글


***


그러니까 이게 지금……


“당에서 보내긴 했지만 내 모가지를 따려고 했던 건 모르는 일이다, 이겁니까.”


오이카와가 피식 웃으며 팔짱을 꼈다. 더 들을 것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몰랐을 리가 없다. 오래 세력을 유지해 온, 견고하고 공적인 조직일수록 상하관계가 분명한 법이다. 눈앞의 인물은 두 대에 걸쳐 총리를 지냈다. 나이가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젊은 고양이와 늙은 호랑이의 피라미드 내 위치야 뻔했다. 어떻게 이들을 집어 삼켜야 할지. 살펴보는 눈엔 총기같은 이채가 서려 있었다.


“애초에 우리 측에서 보낸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쥐덫을 쳐놓고 나를 잡겠다 하면 잡히나?’”
“…….”
“내가 이 말을 벌써 두 번째 하는 것 같은데. 그쪽도 이미 잘 아는 얘기를 내가 굳이 입 아프게 반복해야 합니까? 내 조직, 내 건물 안에서 찬물 뜨거운 물 가리지 못하면 안 되죠. 혹시 고작 그 정도의 사람을 의원이라고 앉혀 놓고 뿌듯하게 정치질로 뒷배나 처 불려먹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요, ? 오이카와가 말을 길게 늘여 단언하곤, 끝에서야 물음표 하나를 붙이듯 상대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이미 사건의 전말을 다 알고 있었을 테니 구태여 일을 두 번 할 이유가 없었다. 언젠가가 되면 싹 끌어모아 죽여버려야지. 고운 얼굴에 전혀 티나지 않는 생각을 다짐처럼 박아넣었다.


“본론으로 넘어갑시다.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화나 짜증이 이성을 앞서가면 안 된다. 이건 협상이고 명백한 의도가 담긴 두뇌 싸움이다. 오이카와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다리를 꼬았다. 그런 그의 거만함조차 원래 그를 위한 것인 양 느껴졌다. 그에게서 흘러나온 무거운 분위기는 마치 페로몬 같았다. 남자가 두려움이 몰려오는 발을 땅에 꾹 눌렀다. 그래 봤자 한참 어린 애송이일 뿐이다.


“전부 죽었습니다.”
“장난 칠 기분 아닌데.”
“사장님이 누구신데 장난을 치겠습니까. 진짜 죽었습니다. 몇 놈 살아있었지만, 다 죽였습니다.”


벌벌 떨던 사내들의 쓸모는 거기서 끝이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만나지 않았다면 조금은 안쓰러워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과, 이야기가 진행되는 영화 스크린 정도의 만남 같은 것. 즉 이 상황에서는 가능성이 없다는 말이었다. 냉철한 눈이 확률을 더듬어 나갔다. 어느 쪽이 우세한지 뻔한 마당에 거짓말은 초짜들이나 하는 실수였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서 산 존재조차 전부 죽였냐는 건데.


“일단 알았습니다.”
“사장님. 저희도 궁금한 게 있습니다.”
“네.”
“저번에 데려간 저희 의원…… 어떻게 하셨습니까.”


푸핫. 상황에 맞지 않는 웃음을 터뜨린 오이카와가 옆자리 사와무라의 등을 가볍게 쳤다. 피해는 카라스노 쪽에도 있었다. 저번에 왔던 의원이 그의 사생아 중 하나라고 했었나. 얽히고설킨 그의 사적 관계들을 대충 떠올렸다. 사랑이 있긴 했나. 우습지도 않았다. 그 비슷한 감정들을 센터 내 아이들을 학살하는 데 사용했던 이가 느끼는 감정이. 적극적 가담, 적어도 방관. 뭐가 됐든 행복하게 생을 마감하게 할 생각은 없다. 오이카와가 이내 따분한 표정으로 사와무라를 본다. 시작 이후 아무 말도 없던 그가 입을 열었다.


“필요에 의해 사람을 좀 죽이지만, 입법부. ……당신네들 법과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정도의 눈치도 없으면 이 자리에 계시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달 아래에서만 살아왔다. 해는 고사하고 달마저 빛이라는 말이 붙어, 그림자 안에 몸을 숨겨 왔다. 생을 유지하기 위해 거친 숨을 고르며 흙탕물을 들이켰다. 수정처럼 맑은 물에 눈이 가도 탐할 수 없다. 비치는 모습은 적들에게 제 위치를 내주는 꼴이었다. 더욱 거울 같은 물에, 자신과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 참회도 반성도 할 수 없다. 바닥에서의 생이란 그런 것이었다. 외부의 무언가들로부터 몸을 지켜는 주던 센터의 벽을 불살랐다. 이제 완연한 노출이었다. 그들을 알음알음 알던 이들은 물론, 그들이 커질수록 위협을 느낄 조직들까지. 그림자 세계엔 법이 닿지 않는다. 무법이랄까, 잔뜩 비뚤어진 이들에겐 비非 법일지도 모르겠고. 자유와 평등 위에 우뚝 서야 할 기본권은 그림자 아래 녹아 묵살된다. 그 누구도 그들의 목숨에 다정해지지 않는다.

입법부, 필요에 의해 사람을 죽이는 입법부. 노래하듯 리듬을 맞춘 목소리가 몇 초간 사그라들었다.


“일말의 희망을 왜 가지십니까? 우리가 당신네 입법부보다 더 깨끗할 리 없지 않습니까, 안 그래?”
“……더해, 기분이 되게 나쁘지 않겠어요? 우리가 지금. 일말의 관습법을 깨고 아오바죠사이 목을 노린 게 누군데. 그 얘기는 어물쩍 넘기고 자기 이윤만 취하시겠다? 추해.”


사와무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테루시마가 이어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을 지켜만 보던 오이카와가 피식 비웃음을 흘리며 발을 까딱거렸다. 5분 뒤, 달라진 의견 있는지 보고 조정하시죠.

째깍.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곳에 있던 이들의 행동이 일순 멎었다. 머릿속 어딘가에 집중하자 생각이 연결되고 시야가 열린다. 사실 조정안은 미리 정해 놓았다. 굳이 일을 더 복잡하게 한대도 찬반만 따지면 됐다. 그러니 이토록 머리를 복잡하게 쓴 이유는 따로 있는 것이다. 우시지마가 미간을 좁혔다. 후타쿠치는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오이카와와 모니와의 눈동자가 중간 지점에서 마주쳤다. 애매한 표정으로 찡긋거렸다. 2분여가 남은 시간, 오이카와가 무언의 신호를 보낸다. 우시지마가 으르렁거렸다.


“이거, 치워.”


제 머리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곧았다. 낮은 목소리가 살기를 싣고 경고했다. 지금 어디다 누굴 상대로 장난을 치는 거지. 화난 목소리와 함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에게로 걸어갔다. 몸이 드러나는 옷이 아님에도 근육이 꿈틀거리는 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억센 손이 멱살을 쥐어 잡았다. 그러나 조급하다거나 불안한 분위기는 전혀 흘러나오지 않았다.


“우리 건물에서 장난질하는 건 우리 전체를 기만하는 거 아닌가요? 살살 기어도 모자랄 판이라고 생각하는데?”


모니와의 목소리는 타락한 봄처럼 음습했다. 당에서 온 이들이 그 두려운 음성에 정신을 빼앗긴 사이 오이카와는 매서운 눈으로 그들을 훑고 있었다. 남자가 움직이는 손이 잠깐 리듬을 벗어났다. 오른손이니 오른쪽이다. 휙 이동한 홍차색 눈에 예상대로 맨 오른쪽에서 전자 기기를 꺼낸 의원이 보였다. 후타쿠치에게로 시야를 넓혔다. 그가 한쪽 입꼬리만을 삭 올려 웃는다. 쾅! 굉음에 방안의 시선이 놀라 전부 후타쿠치의 왼손에 집중됐다.


“설설 기어도 모자란다잖아.”
“……사장님……?”
“기어.”


씨발, 별 좆같은……. 후타쿠치가 쌍욕을 내뱉었다. 두려움에 덜덜 떨리는 다리를 땅에 붙이기 시작하는 건 목숨이 아까운 이들부터였다. 남자는 이리저리 시선을 굴리다 겨우 무릎을 꿇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게 표정으로 전부 보였다. 이건 몇 명의 무릎을 마시고 꿇어낸 것일까. 짐작이 가는 무릎의 무게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인상을 찌푸렸다. 진작 이렇게 나왔어야 했다. 오이카와가 앞으로 걸어 나와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최종 조정안을 건넬 때였다. 말이 조정이지 실은 강요와 다름없는.


“우리 아오바죠사이는, 선거 문제로 다시 우리를 찾아오는 걸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사장님! ……다, 다른 곳은…….”


아오바죠사이는 묵직했다. 그들은 정경政經의 큰손이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정권을 바꿀 만한 힘이 되기에 충분했다. 애초에 그들이 한 정당을 콕 집어 뒤를 봐주는 건 아니었지만, 만약 선호도에 변화가 나타난다면 아찔한 위협이다. 남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오이카와 옆의 이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카라스노, 이미 한 번 당했는데 뒤를 봐줄 리가 없다. 어디가 그나마 만만한지 머리를 굴려 봐도 마땅치 않았다.


“우리가 다른 조직처럼 보여도 추구하는 방향성은 같다는 걸 영 모르시나 봅니다.”
“…….”
“조직 하는 일이 거기서 거기라지만, 우리를 거기서 거기로 보신다면 기분이 좀 그렇죠.”


무릎의 무게를 알면서요, 그렇죠? 오이카와의 구두 굽이 나이 든 무릎을 가볍게 톡톡 쳤다. 그것이 언제든 힘을 실어 제 무릎뼈를 부술 수 있다는 걸 잘 알았다. 본능적인 두려움에 턱이 짧게 떨렸다. 꺼져가는 백열전구처럼 천장의 빛이 깜-박 거렸다.


“……!”


남자가 그에게로 무어라 입을 벌리며 항의하는 다른 의원들을 무시했다. 이만큼의 길을 걸어왔는데 이런 수모 하나 견디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짓밟은 목숨이 몇 갠데, 모아놓은 돈이 얼만데……! 신경을 거스르지 않는다면 전같은 관계를 다시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치심에 눈앞이 노래지면서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경은 꾸준히 내 담당입니다. 내가, 머리가 좋거든.”


당신은 죽을 때가 돼서야 철저히 느끼게 되겠지만. 오이카와가 하고 싶은 말은 피날레를 위해 미뤄두고 대신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중앙 건물에서 만난 이상 발언권은 우시지마를 중심에 둔다. 남자가 일언반구도 없이 뒷짐을 지고 선 우시지마에게 잠깐 시선을 옮겼다. 아무리 오이카와의 일이라지만 규칙은 규칙. 언뜻 무례해 보일 수 있는 행동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아무 문제 없다는 듯 오이카와에게로 목줄을 건넨 이들이 꼭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소름 돋게 견고하고 완벽한.


“아, 이를 어쩌죠. 당신들 때문에 탁자에 금이 갔는데.”
“……같은 걸로 보내겠습니다.”


후타쿠치가 비죽 웃었다. 아까 제가 내리친 탓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이 책임질 건 하나도 없었다.


“마호가니가 어울릴 것 같은데.”
“……그걸로 보내겠습니다.”
“뭘 믿고 그걸 받지?”


돈, 으로 보내겠습니다. 그 말에 기다렸단 듯이 오이카와가 짝 손뼉을 쳤다.


“보스가 여섯이네. 큰 걸로 여섯 장.”


과하다. 일부러 높은 금액을 불렀으나, 수긍할 수밖에 없을 테였다. 마호가니 탁자를 몇 개쯤 살 수 있는 금액이더라, 테루시마가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았다. 혓바닥의 피어싱을 입천장에 굴리며 재미있는 광경에 시선을 집중한다.


“확실히 말이 통하네요. 아들보단 강한가 봐. 아쉽게도 유전은 아닌 것 같은데, 그거 재능이에요?”


남자의 눈이 서서히 붉어졌다. 몸은 분노를 다스리려는 머리의 말을 듣지 않았다. 도를 넘은 조롱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어린 수장의 턱에 시선을 고정했다.


“잘됐다, 그렇지? 그 재능이 당신 살렸네. 우리는 재능이 있어도 죽어야만 했는데.”


시선이 저를 옥죄어오는 것 같았다. 다시 말해, 시선‘들’이. 뼈가 있는 말에 남자가 이를 악물었다. 아아, 탈이 많다. 무리를 해서라도 전부 없앴어야 했다. 폭탄을 투척하든 건물을 붕괴시키든, 어떻게 해서든.


“두 번은 안 죽지, 안 그래?”


마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후타쿠치가 묵직한 한마디를 던졌다. 실수 아닌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다고 그의 차가운 갈색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오늘은 끝이 났다. 경호로 데려온 이들의 엄호를 받으며 무거운 문을 나섰다. 토할 것 같아. 각양각색의 향수와 스킨 냄새가 뒤섞인 데다가 살려두고 싶지 않았던 인물들을 전부 살려 보내야 했다. 기분 나쁜 감정에 속이 울렁거렸다. 오래 멀미를 한 느낌이었다. 막 씻고 나와도 따스한 비누 냄새가 절실해졌다.


“……맞아.”
“나도, 맞네.”


6층에 잠시 들렀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세미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텐도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에게 동조했다. 둘은 서로 다른 것을 얘기하고 있을진대, 그게 어느 쪽이든 문제였다. 물론 같은 답이 나오는 지금이 가장 우려했던 순간이었지만. 아직도 숨을 고르고 있는 세미에게 물을 건넨다.


“뭐 한다고 그렇게 속을 뒤집어 놔, 오이카와?”


담배가 말린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복잡한 표정의 그가 벽 난간을 탁탁 쳤다. 가까이 다가온 모니와는 전체적으로 걱정스런 말투였다.


“……어차피 한 판 붙어야 할 거.”
“화풀이 할만 했어.”


전화를 끊고 다가온 사와무라가 오이카와의 등을 두어번 두드렸다. 하아. 한숨처럼 뱉은 입김이 떠올라 검게 흩어진다. 중앙 건물은 개인 조직 건물에 비해 도심에 가까운 편이었다. 낮보다 밝은 밤이 멀지 않게 알록달록했다. 그래서 그런지, 센터에서는 그렇게 밝을 수 없었던 별도 언뜻 보기엔 하나도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 옥상 한 모서리에서 줄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테루시마와 후타쿠치가 눈에 걸렸다. 가끔 기분 나쁜 날이면 담배를 피던 마츠카와의 얼굴이 그 위로 겹쳐졌다. 연기 마시면 안 답답하냐? 그는 놀리듯 묻는 말에 고개를 저으며 두 번째 개비를 꺼내 물곤 했었다. 몇 번째 개비인지 모를 담배를 꺼내든 테루시마와 눈이 마주쳤다. 하나 할래요? 하얀 것을 설레설레 흔들었다. 무슨 마음이었는지 그쪽으로 향해, 담배를 낚아챘다.


“어라. 돛대네. 후타쿠치, 하나 줘.”
“엉. ……어라. 돛대네.”


멍청한 말을 들으면 그제야 이들에게도 열 몇살이 있었다는 게 느껴졌다. 길게 들이마신 담배는 소설 속 첫 담배같은 재채기도 눈물도, 동반하지 않았다.


“주머니에 든 게 위로처럼 느껴지다가도 돛대가 뽑히고 나면 버려야 하잖아요? 늘 하는 생각은, 우리는 뽑히지 말자 이거지. 뽑기는 존나 하지만.”


테루시마가 킥킥거리며 담배 끝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에 그딴 식으로 담배를 대하는 건 모독이라며 후타쿠치가 욕 몇 마디를 했다. 그는 쓰레기통에 담뱃갑을 골인시킨 테루시마완 달리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담뱃갑을 주섬주섬 외투 안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돛대였다며?”
“아 돛대 뽑힌 배도 가끔은 필요합니다.”


껄렁거리면서도 주머니를 툭툭 치며 웃는다. 모니와의 눈치를 보는 것이리라. 너 다 폈지? 다 폈지? 후타쿠치! 허리에 손을 올리며 이쪽을 향해 소리치는 모니와에 오이카와가 웃음을 터뜨렸다. 안 들린다는 듯 귀를 후비며 후타쿠치가 물고 있는 담배를 슬쩍 비벼 껐다. 이거 왜 피는지 알겠네. 연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주황색 불이 담배 끝을 작은 노을처럼 물들였다. 저녁과 밤이 한 개비에 축약돼 있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유행가는 꼭 언젠가 비슷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보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짤막해진 담배를 쓰레기통에 퐁 던진 그의 입술이 즐겁게 벌어졌다.


*


“가까이서 보니까 어때?”
“잘생기셨습니다. 화장 하신 겁니까?”
“네 거야.”


나온지 꽤 된 드라마 속 명대사를 친 오이카와가 크게 웃었다. 피곤해서 죽죽 늘어지던 얼굴이 잠깐 생기를 되찾았다. 와락 떫은 감을 씹은 듯한 표정의 카게야마를 끌어안았다. 따뜻한 온기에 서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를 더 꼭 끌어안았다. 옅은 비누 향을 맡자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그는 그랬다.


“마음에 안 들어서 좀 쏘아주고 나왔어. 아마 그쪽이랑 우리 관계를 더 악화시키겠지.”
“……담배도 피십니까.”
“그냥 한 번……. 테루시마 건데.”
“건강에 나쁩니다.”


……안 필게.

미묘하게 심각해진 얼굴이 그에게 조언했다. 냉큼 말을 듣겠다고 대답했다. 토비오 쨩은 어떤 것 같아?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더듬으며 오이카와가 물었다.


“네. 원래 제 생각의 오이카와 상이라면…… 중간인 것 같습니다. 굳이 이기고 질 필요가 없다면 비기는 거 말입니다.”
“토비오 쨩. 오이카와 씨는 완벽한 승리를 원해.”
“…….”


그 말을 하는 오이카와가 밤에 핀 해바라기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거의 지워진 담배 냄새와 섞여, 카게야마는 단어를 잃어버린다. 뭐라고 그것을 지칭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아오바죠사이에 돌아온 그는 묘하게 날카로워져 있었다. 날선 표정 위로 손을 올렸다. 금세 누그러진 눈동자가 눅진했다. 단풍 당밀같은 빛깔이 뚝 뚝 녹아 흘렀다.


“이기지 않으면 져. 우리가 비기고 등을 돌리는 순간 내 등에 칼이 꽂혀.”
“…….”
“……이런 곳에서 비긴다는 게 무슨 소용이 있어.”
“좀……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푸른 눈동자가 얼음 조각처럼 그를 꿰뚫었다. 카게야마는 본디 말을 주저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어긋나게 삐죽 튀어나온 입술을 한참 바라보다 결국은 엄지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말았다.

지킬 게 있는 삶은 고되다. 위협을 전부 없애지 않는 이상 끝없이 나쁜 상황에 놓인다. 그도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지 않았다. 그러니 그에게 있어 지켜준다는 것의 의미는, 상대가 손을 더 더럽히지 않는 것. 좋은 경험을 가지는 것. 나쁜 상황을 맞이하지 않는 것. 그래서 제 곁에 있는 것. 어린 날의 제게 작은 허락을 구한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몰라 고통스러워 하다 만난 사람이잖아. 목숨이 엮이는 건 가장 경계하다시피 할 일이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잖아.


“싫어?”
“오이카와 상은 늘 저를 이기고 놀려먹는 게 취미셨죠. …… 그럼 지지 마세요.”


저 그런 거 싫습니다.

푸른 눈동자가 화르륵 타오른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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