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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 밤의 강에는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19


정오


***


우당탕. 빛에 익숙하지 않은 눈에 인상을 쓰며 카게야마가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가 걸치고 있던 셔츠를 뜯어내듯 잡아 벗기자 온갖 상처가 얼룩덜룩한 상체가 드러났다. 다른 곳들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피가 새어나오는 어깨쪽이었다.


“의사 없습니까?!”


허옇게 질린 얼굴로 비상벨을 누르려던 손을 오이카와가 겨우 저지했다. 치료 받고 온 거야. 토비오, 나 괜찮아. 밤 색깔의 눈이 파르르 떨리다 그제야 오이카와의 얼굴로 향했다. 그의 얼굴은 약간 지쳐 보였지만 죽기 전의 사람 같지는 않았다. 남은 잠기운에 느린 두 손이 차가운 뺨을 꾹 쥐었다. 놀란 눈동자가 이리저리 그의 얼굴을 훑었다. 홍차색 눈동자는 여전히 맑았다. 그의 말이 거짓은 아닌 듯했다. 털썩. 침대에 주저앉은 얼굴에 넋이 빠져 있었다.


“이제는 피 안 나와.”
“……놀랐습니다.”
“미안해. 토비오.”


인상 쓴 얼굴이 여전히 빛 때문에 눈이 부셔 그런 게 아니라면, 그는 지금 그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시선이 요리조리 상체를 더듬었다. 얼기설기 붉게 새살이 돋아가는 상처들을 살피다 한숨을 내쉬었다.


“치료를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의사가 해준 건데…….”
“아니, 이거 말입니다.”


못 알아들은 척 딴소리를 하는 오이카와에 카게야마가 친히 상처들을 하나하나 짚어 주었다. 그에 오이카와는 멋쩍은 낯으로 잠깐 고민하더니만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한다. 곧 달랑달랑. 반쯤 짜 쓴 연고가 그의 손에서 달랑거렸다. 헛웃음을 내뱉은 카게야마가 연고를 빼앗아 들고선 그의 손이 닿지 못했을 부분에 그것을 바르기 시작했다.


“어디 다녀 오셨습니까?”
“중앙 건물에.”
“……시라토리자와가 있는 곳 아닙니까? 몇 대 일로 하신 겁니까 대체.”
“정중하게 일 대 일로 했습니다만?”


연고를 문질거리던 손이 멈췄다. 그는 잠시 오이카와의 실력을 의심해보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센터 시절을 떠올려 보고 시라토리자와의 구성원들을 떠올려 봐도 그가 일 대 일로 이만한 상처를 입어 온다는 게 영 의뭉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실력은 카게야마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최근에야 아오바죠사이의 문 앞에서 상대했던 게 끝이라지만, 센터 시절을 되돌아 보면…….

세상에 그렇게 반짝이는 사람이 없었다.


“혹시 우시와카 쨩을 떠올리는 거라면 그만해 줄래? 짜증나니까.”
“우시지마 상이랑 싸우셨습니까?”
“토비오, 눈치!”


오이카와가 상체를 휙 비틀어 카게야마의 왼쪽 볼을 쭉 당겼다. 아 아하여! 카게야마가 화들짝 놀라며 그의 팔을 뜯어냈다. 혹여 우시지마와 싸운 거라 해도 당최 납득이 안 되는 상처들이다.


“텐도.”
“……제가 아는 텐도 상이요? 빨간 머리?”
“응.”
“……진짜 바보같은 질문이긴 한데, 형상화는 쓰신 거죠?”


아, 아프다. 오이카와가 대답을 피했다. 카게야마의 한숨이 등으로 닿아 오는 것 같았다. 몸을 돌려 그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얼마나 떨어져 있었다고 보고 싶었다.

아침 챙겨먹어. 머리에 좋대. 물론 바-보 토비오 쨩이 노력해봤자 오이카와 씨한텐 안되겠지만. 밤색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가 웃었다. 아무 결림 없이 쾌창하게 올라가는 입꼬리가 즐거워 보였다. ……바보 아닙니다. 당연스럽게 따라 나와야 할 말이 왜인지 하고 싶지 않았다. 겨우 말을 꺼냈더니 목이 메였다. 홍차색 눈이 의문을 담았다. 대답 없는 시간 동안 제가 감기에 걸렸는지, 어디가 아픈지, 감정이 상한 건 아닌지 온갖 상황을 고민해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오이카와 상.”
“……?”
“……아닙니다. 밴드 어디 있습니까?”


꺼내 주겠다는 그를 굳이 자리에 다시 앉혀 놓았다. 딱 하루 거른 아침이 어떻게 그의 귀에 들어갔는지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다쳐 올 거면서 제 걱정은 왜 합니까? 말은 할 수 없었다. 그곳엔 이상한 투정이 잔뜩 묻어 있어서.


“이제 주무세요.”
“다 됐어?”


대답은 불을 끄는 것으로 대신했다. 카게야마는 깼던 잠이라 오이카와는 못 취했던 잠이라 불을 끄기가 무섭게 눈이 감겼다.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난 오이카와는 양치하다 비친 등에 덕지덕지 붙은 밴드를 보고 핸드폰을 들었다. 사진-과 메시지: 나 상의 탈의 하고 돌아다닐까봐.-은 마츠카와의 핸드폰으로 자비 없이 전송됐고 마츠카와도 자비 없이 사진을 하나마키와 이와이즈미에게 보여 주었다. 덕분에 다친 어깨를 들킨 오이카와는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고 의사를 불러 치료를 다시 받아야만 했다.


*


이틀 자리를 비웠다고 봐야 할 파일이 산더미였다. 사인을 해야 하는데 오른손에 약간만 힘을 줘도 어깨에 무리가 간다. 하는 수 없이 만년필을 왼손으로 옮겨 펜 끝에 집중한 채 손을 움직였다. 탄생한 글자들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사인은 했으나 찝찝한 파일을 맨 위로 올려 두고 서랍을 열어 도장을 꺼냈다. 쾅 쾅. 사인 대신 신나게 찍어내던 참이었다.


“오이카와.”
“맛키?”


몇 번의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분홍색 머리가 고개를 드밀었다. 그 사이로 보인 검은 수트에 흰 드레스 셔츠가 오늘 그의 행적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검은 구두를 신었을 것이다. 오이카와가 파일을 자리에 내려놓았다. 조용히 걸어 들어오는 그는 예상대로 검은 구두를 신었다.


“잠깐 봐봐.”


흘낏. 손목에 매달린 커프스 버튼에 시선이 닿았다. 그것은 둥글지도 네모나지도 않게 세공된 푸른 보석 위로 백금이 섬세한 잎사귀를 짜내고 있는 형상이었다. 아오바죠사이의 권위를 나타내야 할 때마다 상징처럼 매달고 다니는 것중 하나였다. 오이카와의 표정이 일순 진지해졌다. 인이어 연결을 끊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마키가 앉아 있는 맞은편 의자에 가 앉는다.


“맛층은.”
“북동에.”
“북동에?”


의아한 목소리가 눈썹 하나를 위로 찌푸려뜨렸다. 하나마키가 들고 있는 종이 뭉텅이를 뒤져 빳빳한 종이 한 장을 오이카와 쪽으로 밀어 놓았다. 애들 상황 확인한 표야. 자, 보시다시피.


“두 달 전이네.”
“매번 다른 애들이 와서 알아먹는 데 고생 좀 했지.”
“개새끼들이……”


오이카와의 표정이 섬뜩해졌다. 확실히 손에 쥔 그래프는 두 달 전을 기점으로 급한 기울기를 그리며 상승하고 있었다. 북동은 눈치가 없어 늘 수요가 많지 않던 곳이다. 어디가 대가리고 어디가 줄인지를 몰라, 언젠가 마츠카와가 북동을 지나며 했던 말이었다. 뭘 믿고 있는 건지 간이 배밖으로 튀어 나왔다. 그렇다면 제가 해야 할 건 튀어나온 간을 찾아, 고이 들어 보는 눈 앞에서 아삭아삭 씹어주는 일일 테였다.


“머리가 좋아. 뭘 숨기고 있어.”
“북동만 들어가지 않아. 거기 있는 가게는 무작위로 여러 군데 들쑤셔. 근데 상품은 북동에서만 산다는 거지.”


씨발……. 화가 머리 끝까지 솟았다. 자존심이 잔뜩 구겨지는 기분이었다. 두 달 전부터 기미가 보였다는 건 제게 온 이들조차 여차하면 버리는 패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의 손에 놀아났다는 느낌이 비릿했다.


“웨스트에서 들고온 거야.”
“…….”


오이카와는 자료를 겉눈으로 훑기만 했다. 그는 그것을 만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확신할 수 있는 증거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그의 그 거만한 태도에도 하나마키는 당황하지 않고 핸드폰으로 사진 하나를 보여 준다. 셔츠까지 온통 검은색인 마츠카와가 담배를 피고 있는 사진이었다. 마츠카와는 짧은 곱슬머리를 왁스로 올리고 손목에 무거운 시계 하나를 찼다. 음험한 분위기를 잔뜩 풍기는 그는 실제로도 웨스트에게 잔뜩 열이 나 있었던 때가 있었다. 속인 걸 들키면 죽는다는 게 여기의 관습법 아니었나? 저번에 받았던 USB를 브로커의 발쪽에 내다 던졌다. 제 몸을 둘러싼 스무 개의 총구와, 관절을 우드드득 꺾고 있는 마츠카와까지. 브로커의 목숨줄은 이제 마츠카와에게 달려 있는 셈이었다.


으음. 만족한다는 듯 오이카와가 고개를 까딱했다. 이 판에서 신뢰를 운운하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웨스트와는 나름의 신뢰가 깔린 사이였다. 아오바죠사이가 웨스트의 대 고객일 뿐만 아니라 중앙 조직의 주된 무기들도 대개 웨스트를 통해 운반됐다. 그곳은 우직하면서도 머리 회전이 빠른 편이었다. 오이카와가 하나마키가 건넨 자료를 받아 들었다.


“이건 따로 모은 자료. 웨스트 자료는 사실이야.”
“그래야지, 그래야지…….”
“이거는 각각 동, 서, 남, 북 내역서. 의심 살 정황은 없어.”
“맛층은 아직 북동인가?”


슥 핸드폰을 확인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시간을 길게 잡아 그들과 직접 부딪쳐보려는 심산일 것이다.


“쿄타니, 야하바, 그리고 쿠니미.”
“데리고 갔던 애들은 다른 곳에 돌려?”


오이카와가 의문스러웠던 밤을 떠올리곤 입을 열었다. 대기시켜놔. 말을 끝내고서도 약간의 고민을 더 했다.


“‘마지막 날’에 파악 안 된 사람 얼마나 있었지?”
“카게야마 포함하면 열둘. 나머지는 다 현장.”
“나카무라도 거기 있었나?”
“나카무라 상도 현장이었지.”


하나마키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오이카와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오른쪽 관자놀이도 누르려고 하다가 팔이 아직 낫지 않았음을 깨닫고는 욕지거리를 뱉었다.


“토비오를 살렸어. 나카무라를 죽이진 않았을 거야.”
“맞아. 그날 현장에 나갔던 사람들은 전부 죽이기에 아까운 실력이었네. 어디 큰 데 내보내나 싶었을 정도로.”
“알아봐.”


간결하게 말했다. 하나마키도 알았다는 듯 짤막하게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려다 말고 잔뜩 쌓인 파일을 가리키며 찡긋 윙크를 했다. 그가 저를 놀린다는 걸 알고 있어 악악 소리를 치는 그를 등뒤로 두고 문을 닫았다.


“도청기 카메라 네 개씩 준비해.”
“네.”
“카메라는 성능 제일 좋은 놈으로.”


나가자마자 표정이 싹 바뀐 하나마키가 문 밖에 서 있었던 부하에게 명령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 엘리베이터를 잡아 탔다. 5층에 잠깐 서 부탁했던 것을 받고 1층에 내리자 호출을 받고 온 야하바와 쿄타니, 쿠니미가 서 있었다. 하나마키는 인사할 틈도 없이 오이카와와 나눴던 얘기를 그들에게 전했다. 동시에 쿄타니의 재킷 뒤쪽 깃 안에 하나, 야하바의 코트 단추구멍에 하나, 쿠니미의 바지 주머니에 하나 총 세 개의 카메라를 부착했다. 위치가 크게 상관 없는 작은 도청기는 손에 하나씩 쥐어주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도청기를 붙인 쿠니미가 고개를 들자 그에게 남은 카메라와 도청기를 내밀었다. 마츠카와에게 건네라는 것이다. 그의 알겠다는 대답을 듣자마자 하나마키가 세 개의 등을 팡팡 쳤다. 다녀와.


“제일 잘 나가는 걸로 보고 싶은데.”
“이 칼이 제일 잘 나갑니다.”


북동. 마츠카와는 느릿느릿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 이것저것 살펴보다 질문하자, 기다렸단 듯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답이 나왔다. 그건 해석은 그가 이미 이 정도의 질문에 대한 답을 짜놨거나, 정말 이게 제일 잘 나가거나 둘 중 하나다. 마츠카와가 팔짱을 끼고 불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오십 개쯤 주문 넣으면 얼마만에 받을 수 있지?”
“이틀이면 충분합죠.”


전자다. 모양은 무난하나, 용도와 공장 위치를 고려할 때 오십 개가 이틀만에 만들어질 리 없다. 감히 아오바죠사이를 상대로 오래 묵혀둔 상품을 꺼내줄 리도 없고. 칼은 날이 무뎌지는 순간 가치를 한 번 잃는 것이므로. 그의 거짓말 덕분에 다른 것들까지 찔러봐야 한다. 마츠카와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으나 속은 부글부글 끓어 오르기 직전이었다. 그는 쓸 데 없이 귀찮은 일을 혐오하는 편이었다.


“……!”
“총은 안 파나? 나는 제일 잘 나가는 거 말고 한번에 제일 많이 나가는 게 보고 싶은데.”


다른 무기를 눈으로 훑던 마츠카와의 눈 깜빡임이 한 번 무너졌다. 이후 가벼운 목소리가 귓전에 날아들었다. 그는 오이카와와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제게 연결돼 왔다. 야하바.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그대로 뱉은 그에 마츠카와가 속으로 피식 웃었다. 무슨 자신감에 유독 들떴나 싶었더니 그 뒤로 쿄타니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안 깊은 곳까지 들어오진 않고 문 옆 탁자에 기대 있다. 까딱. 브로커가 야하바에게 집중한 틈을 타 그의 눈길이 마츠카와에 한 번 문 밖에 한 번 닿았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은 그가 성큼성큼 밖으로 향했다.


“너였냐. 담배 한 대 할래?”
“안 피우는 거 알고 그러시는 거죠. 이거 받으세요.”


쿠니미가 카메라 하나와 도청기 하나를 던지듯 건넸다. 땡큐 땡큐. 깔끔한 손동작으로 눈에 보이지 않을 곳에 두 개를 붙인 마츠카와가 주머니 안에서 담배곽을 꺼냈다. 쿠니미는 미련 없이 안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마침 하나 남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입을 대고 빨지는 않는다.


“……올 텐데, 이쯤인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벽에 편안히 등을 기댄 마츠카와의 눈이 어느 순간 반짝였다. 그가 삼분의 일쯤 태운 담배를 느릿하게 입에 물었다. 워커 특유의 묵직한 발소리가 골목 끝부터 들리기 시작했다. 빙고. 스킨헤드의 남자를 한 번 곁눈질하곤 혀를 끌끌 찼다. 관심같은 건 없는 척 핸드폰을 꺼내 그곳에만 시선을 두었다. 남자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문 안으로 들어갔다. 흡. 마츠카와가 아까운 담배를 마지막으로 크게 한 모금 마시고 손가락으로 튕겨 버렸다. 남자의 뒤를 쫓아 북동 안으로 들어가며 빠르게 그를 스캔하는 눈이 나른했다.


“총을 추천하나, 칼을 추천하나?”
“……글쎄. 플레이마다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묘하게 상대를 낮추는 태도에 야하바가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야. 무뚝뚝하게 쿄타니를 부른 건 브로커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오를 즈음 칼 하나가 날아와 그의 발 바로 앞에 박혔다. 오래된 나무바닥 위로 먼지 몇 개가 날아오르다 다시 가라앉았다.


“얘는 칼을 추천한다는데.”
“……기물을 파손하는 건,”
“나는 총을 추천하고.”


야하바의 은색 눈이 싸하게 탁해졌다. 차가운 총구는 제법 두터운 옷을 뚫고서 잘도 배에 위상을 자랑했다. 남자의 머리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를 몸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건 큰 착각이었다.


“초, 총.”
“으응. 문장을 구성하는 게 명사 뿐인가?”
“……입니다.”
“……합칠 줄은 모르고?”
“한꺼번에 꽤 되는 인원에 필요한 거라면 총입니다. 총이 낫습니다.”


그래야지. 야하바가 가까이 있는 총들로 시선을 돌렸다. 자리 배치 쪽에는 센스가 없다. 들쭉날쭉 전시된 총에 입맛을 다셨다. 급하게 해놓은 티가 나기에, 그들이 주문한 게 고가의 총일 일말의 가능성마저 삭제해 버렸다.


“이제 답을 좀 해야겠다. 어느 게 한 번에 제일 많이 나가?”


총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깔았다. 쿠니미는 착실히 가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중이었고 쿄타니는 천장을 바라보거나 기지개를 펴는 둥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지루한 티를 내는 중이었다.


“많이 나가기로는,”
“이봐. 이것보다 좀 더 무거운 건 없어?”


걸걸한 목소리가 말을 끊어먹었다. 자연스럽게 저를 무시하는 태도에 열이 받친다. 그는 분명 아오바죠사이에서 고대하던 사람일 것이다. 머릿속으로 마츠카와의 시야가 펼쳐져 굳이 뒤를 돌 필요는 없었다. 의식하고 있음을 티 낼 필요도 없었음은 분명하고.


“아, 무거운 건 안쪽에 많습니다!”


이 새끼가? 야하바가 미간을 좁혔다. 이곳에 있는 아오바죠사이 구성원이라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짜증이 솟구쳤을 것이다. 브로커는 하던 대화는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지금 들어온 남자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뭐가 한번에 제일 많이 나가냐고. 대답은 해야지. 첫 번째 두 번째 순서를 못 세는데 이 일을 할 순 없잖아.”


험악한 말을 억지로 미뤄둔 마츠카와가 싱긋 웃었다. 첫 번째, 말하며 그는 자신을 손가락으로 찔러 보였다. 브로커가 눈을 굴리는 게 심하게 티가 났다. 아마 스킨헤드의 남자와 이곳에 온 아오바죠사이를 재고 있을 것이다. 뻔하디 뻔한 답을.
일이 끝나면 치워 버려야지. 말귀를 도통 못 알아 먹는 게 아니다.


“이겁니다.”
“……이거, 편합니까?”
“저요?”
“저는 안 써봐서.”


이럴 줄 알았다. 적당한 가격대의 총을 가리키는 그를 보곤 마츠카와가 무언가 더 말을 하려는데 쿠니미가 먼저 운을 뗐다. 키만 해도 저보다 십 센티미터는 클 법한 남자에게 일상적인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뭐……”


긍정이었다. 경계하는 눈빛에 쿠니미가 심드렁하게 그의 몸을 훑었다. 근육, 문신. 대애충 어떤 폼을 잡고 싶은 건지 알겠다. 그러나 혹시모를 충실한 개 스타일에 대비해야 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건 그만이 아니었는지 마츠카와가 때맞춰 입을 열었다.


“일단 열 개.”


아오바죠사이 이름을 적고 달아놓으려는 손을 저지했다. 현금 뭉치를 건네자 그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어차피 다시 거래할 일 같은 건 없을 터였다. 안쓰럽다고 해야 하나. 마츠카와도 쿄타니도 쿠니미도 등을 돌렸다. 야하바만이 마지막까지 브로커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걸음을 옮기다 스킨헤드와 크게 부딪혔다. 씹, 눈깔은 어디다……!


“아, 좌송합니다. 죄송한데. ……다음번에 저랑 마주치러 오실 땐 공복으로 오시는 게 좋겠어요.”


고문하다 보는 토사물은 취향이 아니라. 일부러 말을 꺼내지 않고 앞서 가는 이들의 뒤를 따라갔다. 급하지만 조급하지 않게, 보채지도 않고. 묘한 기품이 흐르는 뒷모습을 남자가 어안벙벙한 얼굴로 쳐다봤다. 그러나 더 많은 생각은 없었는지 브로커의 목에 총을 들이밀며 무어라 협박 어투의 말을 꺼낸다.


“흔한 건가.”
“근데 중소는 (비싸서)못 써요. 오이카와 상이 찾던 거죠.”
“어어. 야하바, 뭐 볼 만한 거 있냐?”


운전을 하면서 잘도 야하바를 돌아봤다. 야하바의 손에는 검은색 가죽 지갑이 들려 있었다. 아까 남자와 부딪치면서 빼온 것이다. 현금 몇 장과 수표 한 장, 카드 두 개. 별 거 없는 지갑에 실망하던 찰나 쿠니미가 그것을 거꾸로 들어 탈탈 털었다. 그의 손에 조그맣게 뭉쳐진 종이 하나가 떨어졌다.


“전화번호네요.”


카메라를 들어 종이 속 번호들을 찍고는 종이를 원래대로 뭉쳐 다시 지갑 안에 넣었다. 아이스크림이라도 먹고 가죠? 야하바가 현금을 꺼내 달랑달랑 흔들었다. 지갑은 그들이 들고 갔다는 걸 굳이 티낼 필요 없었기에 마츠카와의 좌회전 타이밍에 맞춰 오른쪽 인도에 던져 버렸다. 곧이어 인적이 드물어지자 마츠카와가 선루프를 열었다.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타고 가지각색의 머리카락이 위로 몇 가닥씩 둥둥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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