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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 밤의 강에는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20


정오 글


***


톤 다운된 파란 줄무늬 수트가 구김살 없이 매끈했다. 그 옷에 잡힌 주름이라곤 몇 번의 다림질로 생겨난 각이 유일했다. 특유의 광택 때문인지 푸른 기가 도는 흰 드레스 셔츠 단추를 두 개쯤 풀었다. 그에게 단정함은 하나의 무기였고 그것을 살짝 벗어난 개성은 센스였다. 자리에 앉는 순간 수많은 눈이 저를 누군가와 비교하고 짐작하고 판단할 것이었다. 벌써 골이 울려 왔다. 게다가 그는 아침부터 뭔가를 준비하며 이야기를 나누느라 카게야마를 볼 새조차 없었다. 오늘 하루는 여러모로 기분을 망치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할 것 같았다. 짜증 난 얼굴 위로 파운데이션이 펴 발라졌다. 브러쉬로 더 넣을 것도 없는 음영을 넣고, 사각사각 눈썹을 다듬었다. 평소라면 옅게 사이만 채웠을 그것이 오늘은 짙다. 오늘, 친절하고 부드러운 인상은 필요 없었다. 자연스럽지만 확실하게 깐 머리를 헤어 왁스로 고정했다. 톡톡 입술에도 약간의 색을 덧입히자 안 그래도 잘난 얼굴이 눈이 부실 만큼 빛나 보였다.


“보초 애들 결과가 어때.”
“살상용, 무거운 거.”


이런 죽음이 제일 얼얼했다. 죽은 이유도 모르고 죽인 사람도 모르는 허망한 죽음. 살아있는 그 누구도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한 아픈 죽음. 오이카와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박자감 있게 두드렸다. 제가 앉은 자리는 슬픔을 제대로 슬퍼할 수 없는 자리다. 그 시간에 슬픔의 원인을 알아내야 할 뿐. 하나마키가 총알을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손에 가볍게 쥐어 보자 확실히 크고 무겁다. 북동에서 마츠카와가 들고 온 총에는 들어갈 수가 없는 크기였다. 오이카와가 고개를 숙였다. 둘 다 즉사로 추정, 총 자국은 한 군데. 한 명은 정확히 급소를 맞았고 나머지 한 명은 급소를 빗겨 맞았다. 급소를 빗겨 가고서도 한 방에, 즉사라면 살상용이다. 북동에서 마주쳤던 이와 같은 쪽인 건 분명하나, 더 값어치가 높은 총을 사용한다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면,


“……오늘 만날 수도 있겠네.”


흔들리지 말아야 할 이유가 단단해졌다. 오이카와가 오른팔을 돌리며 근육을 풀었다. 칼에 찔렸던 어깨는 이틀 만에 나았다. 새겨진 칼의 흉터에 비록 ‘흔적도 없이 나았다’는 말은 할 수 없게 됐지만. 오이카와의 잇새로 뿌드득 소리가 났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밥도 왼손으로 어정쩡하게 떠먹었고 옷을 갈아입는 것도 시간이 배로 걸렸다. 물론 왼손으로 머리를 감는 그의 모습을 본 카게야마가 그 대신 머리를 감겨줬던 순간은 행복하기 그지없었지만.


“기본 경호는 중앙 건물의 절반이래. 개인 조직에서는 열 명씩.”
“우린 정예로 열다섯 추려 놨어. 네 모가지에 손 한 번 대본 것치고 다섯 명이면 너무 후한 것 같기도 하고.”
“내 목엔 문제없었어.”


어련하시겠어. 슬쩍 비꼬는 하나마키의 머리를 전부 헝클어뜨린 오이카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가 딱 그가 떠나야 할 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그는 약속된 시간에 빠듯하게 회의실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관계에서의 갑과 을은 이처럼 사소한 행동들로 구분된다.
그러나 아오바죠사이는 늘 존재 자체가 갑이었다. 따라서 평상시였다면 그런 행동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나, 오늘은 확실히 위아래를 가려줘야 할 이유가 생겨 버렸다. 오이카와가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커프스 버튼을 채웠다. 푸른 보석이 꼭 누군가의 눈동자처럼 빛을 뿌렸다.


“오이카와 배웅하러 갈래?”
“네?”


노크 소리에 문을 열자 이와이즈미가 서 있었다. 안녕, 카게야마. 그가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그에 카게야마가 채 고개를 숙이기도 전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자 마치 오이카와가 했을 법한 생뚱맞은 말이 그에게서 튀어나왔다. 카게야마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오래는 아니고 중앙 건물에 가는데. 저번에 오이카와 목 따려고 하다 도망친 놈들 때문에 그쪽이랑 만날 일이 생겨서.”
“아…… 이와이즈미 상께선 함께 안 가십니까?”
“보스만 모이라네. 물론 CCTV, 도청기, 개인 카메라 전부 매달고 있지만.”


여튼 그래서. 갈래? 이와이즈미가 씩 카게야마를 향해 웃어 보였다. 네. 그를 따라 내딛는 발에 뺨으로 찬 공기가 닥쳐 왔다. 엘리베이터는 3층에서 멈췄다. 아직 완연한 저녁은 아니라 1층까지 고개를 들이밀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와이즈미가 미리 부하들을 물려 둬, 내리자마자 통유리로 된 벽 가득 바깥이 보였다. 곁의 이와이즈미만 아니라면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고 해도 믿을 만한 공간을 걸어 나갔다. 반질반질한 유리를 보다 입고 있던 후드티의 소매를 끄집어내 손을 덮어 그 위로 살포시 얹었다. 어디서나 구별해낼 수 있는 홍차색 머리가 무어라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게 보였다. 일직선으로 다물린 입술이 평소의 그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위압감을 그려 냈다. 그게 그였다.


“자.”
“……?”
“내 건데, 전화 걸어.”


멀뚱멀뚱 그를 쳐다보는 손 위로 착 핸드폰을 올려놓았다. 핸드폰 화면 위에 적힌 ‘오이카와’. 카게야마가 우물쭈물 하는 사이 이와이즈미가 주머니에서 두 번째 핸드폰을 들고 글자 몇 개를 쳤다. 전송 버튼을 누르자마자 오이카와의 수하들이 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카게야마.”


어서. 이와이즈미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카게야마 쪽으로 손을 흔들어 주더니 엘리베이터 쪽으로 스르륵 사라졌다. 아마도 1층에 가볼 터였다. 꾹. 더 망설이지 않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위요.”
[토비오 쨩?]


놀란 눈은 한 번에 카게야마를 찾았다. 귀에 꽂히는 낮은 음성이 못내 사랑스러웠다. 입술이 큰 호선을 그렸다. 마침 지는 해에 카게야마의 온 몸이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았다. 성가대가 부르는 음악이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세상 모든 것은 엄중하고 느릿했다. 시간도 숨죽이고 그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주황색으로 빛나는 몸이 좋아서 해도 오래 낮을 붙잡고 있는 것이리라. 푸르렀던 머리가 그것을 만나 꼭 제것처럼 물들었다. 어느 순간 그에게서 저와 같은 부분을 발견하는 게 좋았다. 온 세상 지붕은 없고 내리는 가는 비처럼, 그가 자꾸만 저를 적셔 나간다. 마주친 두 개의 눈은 서로의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찬찬히 그를 곱씹었다.


“잘 다녀오세요. 이번엔 제가 지켜드릴 수 없으니까.”
[목 잘 사릴게.]


느슨한 눈꺼풀이 닫혔다 열렸다. 그 진득한 애정이 담긴 눈빛은 오롯이 저만이 독차지하는 것이었다. 반 그의 심기를 거스릴 생각으로 꺼낸 말에 진지하고 확실한 답변이 날아왔다. 그동안 얼굴 살이 약간 빠져 인상이 좀 더 날카로워 보인다. 어쩌다 매일 옆에 붙어 있었더니 평소보다 피곤한 표정이 읽혔다. 뭘 더 해줄 말이 없었다.


“토비오. 웃어봐.”
[네?]
“오이카와 씨 힘들다. 웃어줘 응?”


애매한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카게야마는 제가 지쳐 있다는 걸 눈치챈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에게 웃음을 부탁했다. 앞으로 맞이해야 할 고도의 머리 굴림은 전과 똑같이 힘들겠지만, 일단 가까운 기억에 그의 웃는 낯이 있다는 것만 해도 훨씬 나을 것이다. 카게야마가 입꼬리를 위로 끌어당겼다. 눈과 코는 아무 변화 없이 입만 삐죽 웃고 있다.


[웃었어요.]
“……못생겼어.”
[…….]


정색을 하고 노려보는 통에 오이카와의 목을 타고 큰 웃음이 터졌다. 아니, 아니지! 우리 토비오, 큭, 쨩. 아주 자알 생겼지. 생생하게 들리는 웃음 덩어리가 얄미웠다. 그가 저를 놀리고 있음이 확실한데도 기분이 고깝다.


[그만 놀리세요.]
“오이카와 씨는 어때?”
[못생겼습니다.]


즉답이 튀어나왔다. 카게야마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객관적으로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얄미워서.


“그럴 리 없는데?”
[그런 부분에서 성격이 나쁘다는 겁니다.]
“잘생겼어. 예뻐. 완전 사랑스럽지.”
[그걸 자기 입으로,]
“네가. 토비오 쨩. 네가요.”


카게야마의 표정이 요란해졌다. 잘 아는 표정이다. 겉으로는 떨떠름한 척 내심 기분좋은 표정. 진심을 담은 홍차색 눈동자가 빙글빙글 웃었다. 그와 전화를 한 뒤로 그는 화사한 웃음을 많이 보였다. 시간이 없는데 전화는 끊기 싫다. 작은 투정에 삐죽거리는 입술에 카게야마의 얼굴이 그도 모르게 미소짓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멍한 가슴을 손으로 꾹 눌렀다. 몇 년 만이었다.

그는 이와이즈미가 다시 밖으로 내보낸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리면서도 자꾸 위를 보고 헤벌쭉 웃었다. 위를 볼 때와 부하들을 볼 때의 표정이 확연히 달랐다. 그에게 방해가 될까 전화를 끊었다. 끊긴 화면을 아쉽게 쳐다보는 그가 위에서 전부 보였다. 웃음이 감춰지지 않아 큼 큼 목을 다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자꾸만 웃었다. 출발할 때가 됐다는 말에는 쪽, 손 키스까지 날렸다. 웅. 일 인분 만치의 아쉬움을 담고 떠나는 차를 보며 카게야마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왜 저렇게 웃으시는거지?”
“몰라 묻냐.”
“호, 혼잣말이었습니다.”


황급히 꺼낸 변명에,


“좋아하니까 그런 거지.”


잘 아는 답이 돌아왔다. 남의 입으로 들어서 그런가 영 낯설게 간지럽다. 뺨이 붉었다. 다행히, 해는 아직 지는 중이었다.


“죠젠지.”
“들어왔습니다.”
“다테.”
“5분이면 도착합니다.”
“카라스노는.”
“십 분 남았습니다. 저희는 반 시간 더 걸립니다.”


오이카와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간격이 충분히 마음에 들었다. 눈을 감고 오늘 만나야 할 각 조직 수장들의 특징을 머리에 끄집어 냈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만나는 이들로 따지자면 저를 제외한 넷이 A 포지션이다. 실력을 뒷받침하듯 가진 플레이들이 온통 가지각색, 요란하다. 금세 찌푸려진 미간을 누르려다가 좀전 바른 파운데이션을 떠올리곤 한숨과 함께 괜한 주먹을 쥐었다. 9층에서 대기, 미팅이 잡힌 건 5층이다. 그들과 이미 상황과 관련해 화상으로든 실제로든 면대면으로 많이 맞대 보았다. 세미니 텐도니 하는 얘기들도 이미 다 나눈 상황이었다.


“오 분이면 들어갑니다.”
“전화, 세미 에이타.”


차 안에는 질서 잡힌 분주함이 있었다. 이와이즈미, 하나마키, 쿠니미 등 하다못해 쿄타니라도 곁에 있었으면 좀 나았을 것이다. 오이카와가 피곤함을 다잡고 거울 속의 제 모습을 살폈다. 흐트러짐 없이 올라간 머리나 번지지 않은 화장이 단정하기만 했다. 차는 오랜만에 건물 밖에 서고, 깔끔하게 차려 입은 오이카와가 발을 내딛는다. 살기 어린 그의 눈빛만 아니었다면 런웨이라고 착각할 정도다.


“다테입니다.”
“죠젠지입니다.”
“카라스노입니다.”
“시라토리자와입니다.”


9층에 내리자마자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이 우르르 그에게 소속을 밝혔다. 오이카와는 한 번의 말마다 한 번의 목례로 가벼운 인사를 남겼다. 이들은 오늘 조직의 수장들의 경호와 위엄을 담당했다. 나머지 건물 경호는 시라토리자와 본 건물 경호 쪽에서 담당할 것이다. 오늘 일만을 위한 건물 경호가 50명. 많지도 적지도 않고 적당했다. 오이카와의 뒤로 열 다섯 명의 아오바죠사이가 걸어 나왔다. 이렇게 모이는 자리면 자주 만나는 터라 그들끼리도 서로 눈인사를 하며 알은체를 했다. 그러나 몸의 긴장은 풀지 않는다. 정예로 뽑아 데리고 온 이들다웠다. 각 조직 경호대의 우두머리들이 문 앞에 선 그에게 꾸벅 허리를 숙였다. 이후 나머지 이들도 똑같이 허리를 숙였다. 정갈한 대우와 호위 앞에 오이카와가 문을 연다.


7시.
미팅 시작 예정 시간이었다. 홍해가 갈라지듯, 9층의 검은 무리가 반으로 갈라졌다.

7시 15분.
각자 데리고 온 무리들과 응급・비상 상황 시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공식적으로 정한 정상적 일정은 굳이 확인하지 않는다.

7시 20분.
오이카와를 제외한 나머지가 전부 5층 미팅 장소로 향했다. 오이카와는 아오바죠사이 열다섯 명을 이끌고 6층에 내렸다. 회의 장소 위층, 편한 옷차림의 세미와 텐도를 만났다. 인이어의 정상 작동을 확인한 뒤 5층으로.

7시 30분.
뚜벅 뚜벅. 무게를 실은 구두 소리가 작지 않다. 맨 마지막으로 오던 오이카와의 발소리가 멎자, 한 숨을 돌린 뒤 무거운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처음은 시라토리자와, 우시지마 와카토시였다. 그는 갈매색 머리를 시원하게 넘겨 반듯한 이마를 드러냈다. 암녹색의 짙은 눈썹이 진중했다. 주문 제작한 와인색 수트는 그의 체형에 딱 맞다. 그의 큰 보폭을 따라 바짓단이 위로 올라가 슬쩍슬쩍 복숭아 뼈가 드러난다.


“잘들 계셨습니까~?”


씩 웃으며 장난스럽게 나왔던 말은 마법처럼 정리됐다. 입을 다물고는 눈동자만을 굴려 미리 와 있었던 당 측의 사람들을 훑었다. 웃음기 사라진 갈색 눈동자가 어둡다. 탈색한 머리는 역시나 위로 올렸다. 그 색보단 약간 어두운 노란 수트가 눈에 뛰면서도 지나치지 않게 그의 몸을 감쌌다. 귓불의 것을 제외한 나머지 피어싱은 전부 뺐다. 죠젠지, 테루시마 유우지였다.


“그러면 안 될 텐데.”


테루시마의 뒤를 따라 잘 있지 않았어야 한다는 듯 입을 연 것은 다테, 후타쿠치 켄지였다. 갈색 앞머리를 반 깠지만 껄렁한 목소리 탓에 집중되진 않았다. 초록색 수트는 계절에 잘 맞는 톤으로, 세련됐다는 말밖엔 나오지 않았다. 펄럭. 일부러 한 번 턴, 어깨에 걸친 재킷 뒤로는 흰 수트가 눈에 띄어 온다. 같은 다테, 모니와 카나메. 그는 후타쿠치보다는 온화한 성품으로, 무기 쪽보다는 마약 쪽 거래에 주로 나가는 편이었다. 물위 거래라면 말로 거래를 이어가는 쪽. 단정한 넥타이가 후타쿠치의 수트와 색이 같았다. 쌍두보스. 그림자만을 찾아 다니는 이들이 가끔 다테를 칭하는 말이었다. 다테는 예외적으로 중간에 수장이 한 번 교체되었다. 그러나 둘의 위상은 의미만 다를 뿐 거의 같았기에 그들은 그렇게 칭해졌다. 쌍두가 한번에 나타났다는 것은 상황의 심각함을 증명하는 것. 검은 곱슬머리에 올라간 큰 눈, 통통한 볼살에 다정함이 그득 묻어 나오는 그였으나, 그 역시 죽음을 증오했다. 특히나 그게 오이카와고, 이 자리에서 마주할 이들이 오이카와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던 존재라면 더욱이. 바다처럼 새파란 눈동자에서 아무 감정도 흐르지 않는다.


“일찍 끝내죠.”


카라스노, 사와무라 다이치. 무광의 검은 수트가 유독 어두워 보였다. 짧은 머리를 대충 올려, 몇 가닥 머리가 흐르는 이마가 단정했다. 낮고 달콤한 목소리엔 음정이 없다. 우묵한 입술 아래로 둥근 그림자가 졌다. 무거운 향수를 뿌린 손목 뼈가 둥글고 단단했다. 잘그락. 보라는 듯 시계를 빼 흔드는 손길이 그의 화를 짐작케 했다. 감았다 뜬 고동색 눈동자가 잔잔한 위압감을 담았다.


“무기 지참은 금지입니다. 아. 정말이지.”


짜증나.
세 어절이 그렇게 섬칫한 건 아마 이 자리 모두에게 처음일 것이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아오바죠사이, 오이카와 토오루였다. 그는 변변한 인사 대신 문을 닫는 이의 가슴에서 총을 꺼내 뒤쪽에 서 있는 남자를 겨눴다. 어? 시선이 닿기도 전에 총알이 그의 허벅지에 박혔다. 나름 정예를 데려 온 건지 자리에 쓰러지면서도 소리를 억지로 참는다.


“다음엔 어딘지 알죠? 잘 알 거야. 나를 그렇게 만들러 왔었잖아.”


끌어올린 입꼬리에 오한이 들었다.







* 덧. 사담.

어느새 밤의 강도 20화를 맞이했습니다. 중간에 우여곡절이 정말 많았지만 그래도 어느 날엔 이렇게 20화가 오고 마네요. 모 아이돌 팬이었을 적에, 제가 처음으로 완결낸 장편 팬픽이 하나 있었습니다. (물론 1부 마무리긴 했지만요^^;;) 근데 그게 딱 20화였어요. 그래서 20이라는 숫자가 저한텐 참 의미가 깊어요. 글과 함께 나눴던 스무 살의 방황이라거나 또 언젠가의 팬픽의 20화, 완결처럼요.

밤의 강은 1부와 2부로 나누어 연재할 예정입니다. 1부까지는 시놉 상에서 결말을 전부 지어 놓았고 2부는 여전히 다듬어 가는 단계예요. 어떻게 됐든 어떤 이야기가 나오든 즐겨 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많이들 좋아하시는 소재가 아니고, 아직 당최 무슨 내용인지 감이 안 잡히실 수도 있는데도 여전히 또 꾸준히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심심한 감사 인사를 보내요. 제 글이 여러분 삶의 아주 조그만 낙이라도 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1부의 2/3 이상은 온 듯싶어요. 또 쓰는 길이에 따라 조정될 수도 있겠지만요. 남은 화들도 함께해 주세요. 20화를 읽은 그 짧지 않은 시간을, 다시 없는 소중한 시간을 제 들에 투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1화로 곧 찾아뵐게요.


그리고 늘 응원해 주는 존.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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