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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 밤의 강에는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7
정오 글
***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아주 미세한 일만을 가지고 세계를 재단한다고 한다. 한쪽 벽을 꽉꽉 채운 책들을 쳐다보는 카게야마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저도 결국은 그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오이카와가 책을 좋아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벗어났다고 여기고 있었으나 결국 제가 경험했던 전부는 센터, 또 센터, 다시 또 센터였기 때문일까.
오이카와의 책이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그는 어쩌면 여전히 편협한 우주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검은 막으로 둘러싸인 불통의 벽. 아무도 건들지 않던 그 소우주를 오이카와는 거침없이 두드렸고, 결국 한 귀퉁이를 깨는 데 성공했다. 빛이 밀려 들어온 세상에 카게야마는 눈을 들어 세상 밖의 세상을 보았다. 그곳엔 오이카와만이 존재했다. 어린 새가 알을 깨듯, 우주를 부수고 나온 결과는 오이카와 토오루 그뿐이었다. 필연적으로, 세상은 곧 당신. 그랬던 적이 있었다.
“……?”
꾸벅꾸벅 졸고 있는 둥근 머리는 편안하다. 밤색 생머리는 하늘의 별들처럼 와르르 쏟아져 들고 있는 책에 은하수를 남긴다. 이곳은 언제고 서로의 목에 시퍼런 칼날을 들이댈 수 있는 세계다. 당근과 채찍, 양 극단을 쥔 채 균형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오이카와 토오루. 칭송받는, 그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입을 모아 조직 경영에 능하다고 얘기하는 이였지만, 실상 그는 늘 피곤하고 지쳐있는 상태였다. 높은 자리에 오른 만큼 커진 책임, 한 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해 목까지 뻗쳐 오는 칼날들, 습관이 돼버린 경계와 의심으로 가득한 낮. 게다가 겨우 혼자의 시간을 갖게 되는 밤조차도 악몽이 지배하는 경우가 대다수. 따라서 오이카와는 어느 자리에 어떻게 서든 늘 마음 한 구석을 불안에게 내줘야만 했다.
“토비오 쨩. 바로 누워서 자.”
“안……, ……자…… 요……”
잠 기운에 취한 음성이 흐느적거렸다. 카게야마의 몸을 침대에 눕히려고 하자 손을 내저으며 거부한다. 오이카와가 몸을 말아 그의 옆에 파고들었다. 이불 안은 카게야마의 체온 덕에 따스하고 건조했다. 왼손을 이마께에 갖다 대고 갓 태어난 무언가를 다루듯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그가 꼭 쥐고 있어 조금 우그러진 책을 살살 빼내자 뜻밖에도 시집이었다. 글자가 제일 없는 것을 찾다 이것을 뽑았을 걸 생각하니 광대뼈에 힘이 실린다. 침대 옆 콘솔 위에 책을 올려놓고 침대 헤드에 허리를 기댔다. 늘 혼자 있던 공간에 생명체 하나가 더 들어온 기분은, ……. 카게야마의 머리가 휘청거리다 오이카와의 어깨 위로 묵직하게 안착했다. 그를 위해 놔둔 컨디셔너를 잘 쓰고 있는지 보드라와진 머릿결이 목을 간지럽혔다. 카게야마를 닮은 향이 미미하게 코를 파고들었다. 느리게 내쉬는 숨이 쇄골 위를 뜨뜻하게 데웠다.
“토비오 쨩. 잘 자.”
내일까지 밤새 네가 그리울 거야. 다정한 목소리는 꿈처럼 카게야마의 뇌리에 머물렀다. 고민하다 그와 함께 수마에 빠져든 오이카와도 꽤나 편안한 표정이었다. 악몽은 여전히 그를 찾아왔지만 오늘만큼은 그 꿈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때의 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결말은, 펼쳐지지 않은 채 제 곁에서 숨 쉬고 있었으므로.
[오이카와. 카라스노에서 연락 왔는데.]
“어어. 내가 다시 넣겠다고 연락 줘.”
[네가? 굳이 안 그래도 되잖아. 하는 김에 내가 말 전해줄게.]
“됐어. 이번엔. 나 오늘 오전 오—랜만에 오프다? 오이카와 씨 사생활을 즐기게 좀 부탁해, 맛층. 응, 오이카와 씨도 사랑하지 그럼. 내 친구!”
[씨발. 아침 역류할 것 같,]
뚝.
매정하게 끊긴 전화를 붙잡은 채 마츠카와가 별의별 욕을 다 내뱉었을 걸 생각하며 오이카와가 키득거렸다. 카라스노. 머릿속으로 그들을 떠올렸다. 먼저 접촉해 올 것 같긴 했다만서도 예상보다 이른 시각이었다. 뭔가 눈치를 챘나. 소문을 들었다고 해도 이렇게 빠르게 ‘그’가 카게야마라는 것을 판단해낼 수는 없을 텐데. 늘 말려 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삐툴게 떨어졌다. 기분이 나쁘다.
“……아.”
“……어.”
샤워를 하고선 바지만 입고 나온 탓에 그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당연히 오이카와가 일을 나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카게야마가 황급히 의자 위에 걸쳐 놓은 옷을 꿰입는다. 공백이라는 단어가 크게 그를 덮쳤다. 오이카와가 방금까지 짓고 있었던 서늘하고 어긋난 표정이 머리를 휘저었다. 물기 때문에 말려 올라간 옷을 풀며 그런 생각을 한다. 당신은 거기까지 가 있었구나. 하는.
“씻고 있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어.”
봤을까? 오이카와가 내면으로 큰 한숨을 쉬었다. 카게야마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좋은 모습만 보여도 모자랄 판인데, 이런 표정을 내보이다니. 짜증이 울컥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았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모든 일들의 이유이자 목적이 될 만한 것이고. 뺨을 긁적거리다 아무렇지 않은 체 입을 열었다.
“선물.”
“…….”
“인이어야. 책에는 영 흥미가 없는 것 같고. 내가 뭐 하고 지내는지…… 여긴 좀 흥미가 있을 것 같아서.”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저 오이카와 상 안,”
“혹시나 싶으면 말 꺼내지 마. 토비오 쨩.”
네가 무슨 말을 할지 다 알고 있으니까. 욱신거리는 가슴 위로 가면이 드리웠다. 카게야마가 제가 하는 말을 똑바로 알아들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는 오이카와의 가슴팍을 일부러 쑤시고 있는 중인 것이다. 날이 선 헛웃음이 잠깐 그 주위를 맴돌다 사라졌다. 떨리는 손을 꽉 붙잡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가 지어낸 미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아마 꽤 맘에 들 걸?
혼란스러운 표정의 카게야마에게 살랑살랑 긴장 풀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휴대폰을 든 채 오이카와가 미련 없이 발길을 돌린다. 전화는 사장실에서 해야 할 것 같았다. 문을 나가자마자 험악하게 굳은 얼굴이 한동안 제 자리를 찾지 못한다.
[네.]
“사와무라. 잘 지냈어?”
[네가 웬일이야?]
사무적이었던 음에 즐거움이 실렸다. 안 그래도 아까 전화했는데 네가 따로 연락하겠다고 했다길래. 우직한 목소리 가득 친밀감이 묻어났다. 책상 위에 올린 다리를 검지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사와무라와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 건 도움이 많이 된다. 특히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솔직히 이깟 일 가지고 우리가 만날 필요가 있나 싶긴 하지만.”
[동의해. 대외명분이란 게 참.]
“나 혼자 너 마중나갈 거야. 너도 수행원 적당히만 데리고 와. 알지?”
오이카와가 아무렇게나 놓인 종이에 날짜를 휘갈겨 썼다. 아무리 이곳 조직의 수뇌부가 센터에 있던 이들로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들 본인이 아닌 이상 그 사실을 아는 존재는 드물었다. 게다가 구태여 과거를 끄집어냈을 때의 이득도 없었으므로 그들은 그저 우연히 친한 사이였던 척 행동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에 그를 찾아왔던 의원처럼, 두 조직을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 적대관계로 만들려는 수작 뒤에는 늘 공적인 만남이 필요했다. 그건 그 조직의 누군가가 서로 만남으로써 두 조직 사이의 신뢰가 아직 깨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보통 등장하는 건 조직 내 부수장. 아오바죠사이로 따지면 이와이즈미. 수장은 대개 건들지 않는다. 그건 묵직한 패였다. 예를 들어 오이카와 토오루는, 아오바죠사이 그 자체였으므로.
“쓸어버릴 거야.”
[기어오르는 거, 괜히 짜증나게 하잖아.]
우두둑. 잇새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낮아진 두 수장의 목소리에 살기가 꼈다. 오이카와의 표정이 슬쩍 찌푸려졌다. 통화를 시작하면서부터 깔작거리던 손끝의 굳은살이 결국 뜯겨 나갔다. 실수로 깊게 뜯어 분홍색 살이 비쳤다. 신경이 쓰인다. 쓰린 손끝을 입에 물며 유유히 사장실을 빠져나갔다.
*
“뭐 필요한 거 있어? 오이카와 씨 오늘은 중간에 뛰쳐나오고 그러지 못해.”
“아, 없습니다.”
“오늘 이거 꼭 끼고 있어?”
근 일주일 정도 가끔 심심할 때마다 오이카와가 준 인이어를 끼곤 했었다. 인이어로는 주로 오이카와의 거래 내용이 흘러 들어왔는데, 제법 재미가 있어 일상의 심심풀이 땅콩 같은 존재가 되었다. 마음을 놓고 들을 수 있기도 했고. 중요하거나 새어나가면 안 될 일들은 오이카와가 미리 판단해 연결을 끊었을 테니.
“아, 정말…….”
오이카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분명 좋은 사람이지만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더더욱, 사랑하지 않는다. 습관이 될 정도로 되뇌었던 말이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친절을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를 볼 때면 당연한 수순으로 나카무라의 생각이 났다. 태양처럼 이글이글 빛나던 눈동자나, 좀 더 짙은 색의 머리카락이나, 흰 피부나, 표현이 직설적이던 모습이나. 그는 오이카와와 닮은 듯 달랐다. 오이카와는 같은 빛의 눈을 가지고도 남중 고도 0도의 차분한 색을 띠고 있었고, 나카무라는 90도만큼 활활 타오르는 색을 띠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여전히 오이카와의 오래전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이카와는 그에게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말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지금 카게야마에게 확실한 게 있다면 오이카와는 그를 떠났고 나카무라는 그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반짝거리던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두려워했고, 주저했고, 저를 놓아버리고, 종국에 빛을 잃었다. 그의 말대로 인이어를 귀에 꽂는 것은 그가 더 이상 무언가를 피하려고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저 카게야마 토비오는, 사랑했던 연인 나카무라 와타루를 찾고 싶을 뿐이었다.
“오랜만이다.”
줄로 선 검은 차들의 문이 단 한 대를 제외하고 일사불란하게 열렸다. 검은 정장을 빼입은 이들이 네다섯씩 차에서 빠져나왔다. 열리지 않은 차를 둥글게 에워싸더니 그 차문을 열었다. 피식. 반가움의 미소를 입술 위에 얹은 오이카와가 열린 차문으로 나온 이를 향해 걸어갔다. 뒤에 따라붙는 제 조직원들을 물린 발걸음이 파격적이다.
“응.”
사와무라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 서늘한 견제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누구라도 두 조직의 사이가 좋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터였다. 대신 단단한 어깨에 팔을 걸쳤다. 돌아본 뒤에서는 그와 함께 온 조직원들이 일렬로 선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사와무라 다이치가 수장으로 있는 조직 카라스노. 오이카와는 그를 상대로 조그마한 도박을 걸 예정이었다.
패가 섞인다.
“어떻게 했어? 의원.”
“맛키가.”
“가족 얘길 꺼냈나 보네.”
웃기지도 않아. 말은 자신이 없다면 안 꺼내는 게 상책 아닌가. 좁은 그릇이야. 공천에 힘을 실어 주면 끝까지 우리에게 의지하려 할 거야. 최악의 경우엔 역으로 입을 벌릴 수도 있겠고.
말의 물꼬를 튼 건 누구든 상관없었다. 하나씩 뱉어내는 문장들은 마치 원래 하나의 말이었던 것처럼 매끄럽게 이어졌다. 일에 대한 대책들도 몇 분 이내로 결정이 되었다. 오이카와가 아직 뜨거운 잔을 들어 올려 차를 머금었다. 쌉쌀한 내가 수증기를 타고 올라와 눈앞을 부옇게 흐리다 사라진다. 날카로운 눈초리가 그 사이로 사와무라를 뜯어내듯 훑었다. 하하하. 평소처럼 속 좋은 웃음을 터뜨린 사와무라도 찻잔을 들어 올렸다.
“최근 사람을 하나 맞았지?”
“거기까지 소문이 들었나? 벌써 죽었다니까.”
사와무라가 꺼낸 말은 오이카와의 예상대로였다. 덤덤한 음성 끝에 덤덤한 음성이 따라 나왔다.
“아니야.”
“…….”
“소문이 돌던 것치고 너무 빠른 처리였어. 괜한 데 네가 흥미를 보였다는 것도 그렇고.”
“……계속해 봐.”
“계속할 게 뭐가 있겠어. 카게야마, 그 애지?”
사와무라가 꼰 다리 위로 전등의 빛이 흐트러졌다. 확답 요구에 가까운 그의 목소리는 끄트머리가 내려가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아직은 눈 감아주고 있는 것 같고. 그렇지?”
“변명할 거리를 못 찾겠네.”
“나랑 스가만 추측하고 있던 거야. 다른 애들한텐 아직 말 안 했는데,”
“앞으로도 말하지 마.”
매섭기는, 오이카와. 사와무라가 길게 기지개를 켰다. 오이카와의 눈길이 사와무라의 작은 움직임에도 빠르게 따라붙었다. 계획에는 차질이 없어야 한다. 오이카와가 찻잔을 들어 올려 혀끝을 적셨다. 무릎을 슬쩍 움직였다. “오이카와.” 인이어와의 연결을 끊으려던 몸이 주춤한다. 그의 이름을 부른 사와무라의 얼굴에 피곤이 잔뜩 묻어 있었다.
네가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잘 있겠지 카게야마는. 그래도 부탁이야. 카게야마가 잘 있게 해 줘. 나라고 어떻게 카게야마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냐만은, 우리는 아직 카게야마의 말을 들어보지 않았잖아. 알잖냐. 좀, 그런 일 외에는 어수룩해서, 거짓말도 못해. 말이라도 해 주면 다 믿을 텐데. 가족 같은 팀 아니었냐. 어떻게 안 믿겠어. 음, 너랑 사이가 틀어지고 카게야마는…… 글쎄,
“……이게 뭐예요?”
카레를 좋아했다는 건 알아? 그것도
“약간 매운맛.”
—약간 매운맛. 팩에 든 요구르트도 좋아해. 하나는 늘 아쉽다고 했으니
“이건 두 개.”
—부탁해. 오이카와. 나도 그렇고 스가도, 많이 걱정하고 있어.
“……요리사 잘못 뽑으셨네요.”
“미안.”
그 말을 끝으로 카게야마는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들리는 소리라곤 숟가락과 접시가 닿아 달그락거리는 게 다였다. 간을 어떻게 한 건지 샛노란 카레는 맵고 짰다. 입가로 올라오는 따끔거림을 무시하며 다시 카레를 퍼올리던 카게야마의 행동이 일순 멎는다.
“냉장고에 조금밖에 없어서…… 미안.”
사와무라의 목소리와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밤 열두 시가 진즉에 넘은 시각, 요리사가 있을 리가 없었다. 다 알면서도 투덜거리던 것은, 왈칵 문을 두드리던 감정을 삭히기 위해서였다. 입술을 꾹 깨문 카게야마가 큼직하게 썰린 돼지고기 조각과 함께 카레를 푼다. 고개는 점점 그릇으로 향하고 숟가락질도 점점 빨라졌다. 참고 참던 눈물이 툭 툭 카레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짜다. 그가 삼키는 것이 눈물인지 카레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리웠다. 인정하지 않고 싶었다. 카라스노를 향한 그리움이 몸을 부풀려 크기를 키워 버리면 나카무라를 더 이상 찾지 않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감정이란 그의 외면과는 상관없이 이미 자리를 잡아 버리고 만 존재였다. 고개를 숙인 채 마지막 카레 한 입을 먹고 나자 더 할 수 있는 행동이 없다. 손으로 얼굴을 막지만,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흐르는 액체까지는 막을 능력이 없다.
“토비오. 울지 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울지 마.”
“그런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대체…… 저한테 왜 이러세요.”
울면서도 눈물을 참느라 달아오른 눈은 가는 핏줄들이 선홍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눈을 감겨주고 싶었다. 카게야마는 저 멀리 있는 것 같았다.
“멍청한 짝사랑이지.”
끝날 수 없는 외길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거나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거나. 그러나 둘 중 아무것도 우리의 답이 되어 줄 생각이 없으므로.
“오이카와 상. 늦었습니다. 늦었어요…….”
“……미안해, 울지 마.”
차마 알고 있노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카게야마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안 울어요.” 뾰족하게 나온 말에서 소금 내가 났다.
“그래. 그럼 비가 오는 거야.”
“…….”
“토비오. 안을까.”
“싫습니다.”
“비 함께 맞을까.”
“…….”
오이카와가 끌어안은 카게야마는 들썩이고 있었다. 뜨거운 체온이 눈물을 말리려 애를 썼다. 어깨가 축축했다. 빠른 박동이 느껴지는 등을 단단히 껴안았다. 카게야마의 손은 그저 침대 위로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바라는 게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탐욕과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 내린다. 눈에는 한밤이 담겼다. 새로운 하루의 해가 타오를 때까지 그를 놓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소름이 돋을 만큼 서늘한 감정이 박힌 유리조각처럼 그의 눈 안에서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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