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오이카게] 밤의 강에는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4
정오 글
약간의 잔인한 표현이 있습니다.
***
걱정했던 건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 평온한 오후였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불신을 품에 안고 있었지만 그런 그를 업신여기기라도 하듯 멀쩡한 날들만이 눈앞에 펼쳐져 왔다. 피곤한 얼굴로 지퍼를 턱끝까지 채웠다. 카게야마가 들어오고 그다음 해를 마지막으로 이곳엔 더 이상 아이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수요는 여전히 존재하고, 훈련이 잘 된 이들은 소위 ‘스카우트’된다. 그 주체가 정부 쪽의 비밀 기관이라는 말을 언뜻 듣기는 했으나 확실치는 않았다. 애초에 이곳의 정보가 출처가 명확할 리 없었으므로.
- A. 니시오, 사사키. M. 세노오, 마츠카와. E. 오이카와. G는 제외 내일 밤까지 너희들의 모든 연습시간은 자율이다. 그동안 서로를 익혀.
처음 보는 연구원이다. 가슴팍에 푸른 배지를 달고 있는 걸로 봐서는 실전에 투입될 이들을 뽑으러 온 목적일 것이다. 그 배지를 전에 한 번 본 적 있기에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름을 불린 이들은 뿌듯한 듯 가슴을 편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이카와가 그네들의 얼굴과 이름을 머릿속에 넣으려 최대한 노력하며 1-3 연습실로 발을 옮긴다. 말을 섞어본 결과 니시오와 세노오는 저보다 세 살 위, 사사키는 한 살 위였다. 마츠카와와 잠깐 눈인사로 반가움을 표했지만 굳이 아는 체는 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맡는 임무였다. 이번에는 어떤 임무일까. 오이카와가 무심한 얼굴로 첫 번째 임무를 떠올린다. 한 시간쯤 차를 타고 갔었나, 거래를 위한 중간 건물에서 표적을 기다리고 있다가 급습하는 거였다. 그는 사로잡고, 그가 가지고 있던 물건은 회수해오는 일이었는데 상대가 어리숙한 탓에 위험한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다.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이 다시 그를 찾아온다. 수많은 연습과 노력 끝에 그제야 그 자리에 섰을 때, 그때의 규칙은 단 하나였다. 위험한 상대라고 느껴지거나 정체를 들킬 가능성이 있을 시 즉살할 것.
- 나는 니시오. A의 극에 가까운 공격형이야. 현장 경험은 두 번.
- 사사키. 무기에 능력을 넣을 수 있어. 오늘이 처음.
- 세노오라고 한다. 포지션은 M.
- 마츠카와. 주로 쓰는 건 결계.
오이카와가 그 자신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자기소개라는 것도 결국 E가 쉽게 팀원들을 파악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으므로. 속 좋게 인사를 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강당 같은 나무 바닥이 아닌 단단한 대리석 바닥이다. 낯설게 차가운 감촉이 손을 울렸다. 눈을 감았다. 그가 눈을 감자마자 그와 내일 밤 한 팀이 될 이들도 눈을 감고 그를 중심으로 둥글게 주저앉는다. 오이카와가 마음을 열고 감각을 넓게 펼친다. 검은 머릿속에선 오이카와에게 마음을 연 이들의 좌표가 점처럼 콕콕 떠올랐다.
- A, 니시오상.
언제나 최우선은 주된 공격을 담당하는 A. 니시오의 “응.” 하는 대답과 함께 TV 화면처럼 그의 시선이 영상으로 펼쳐졌다. 씨익 미소를 펼치며 “사사키상?” 작게 얘기하자 금세 사사키의 시야도 공유된다.
- M 갈게요. 세노오상.
번뜩 화면이 하나 더 펼쳐졌다.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퉁긴다. 세 번째쯤 가면 시야가 지직거리며 이미지로만 펼쳐지는 초짜 E들과 달리 오이카와는 숙련된 E였고, 세 번째 시야도 여전히 문제없이 선명했다.
- 마지막.
마츠카와는 부러 가장 마지막에 불렀다. 오래 손발을 맞춘 탓에 그의 시야를 보는 건 식은 죽 먹기였기 때문에. 친하고 오래 본 이와 같은 팀에 있다는 건 일종의 보험 같은 거였다. 최후의 상황에서도 큰 무리를 수반하지 않는다. 쉬이 마츠카와의 시야를 확인한 오이카와가 짝짝 박수를 치며 눈을 떴다. 완벽합니다. 웃으며 말하자 사사키가 엄지를 치켜든다. 저까지 포함해 총 다섯 명의 행동과 안전이 모두 제 손안에 달려 있다. 몸을 죄어 오는 적당한 긴장에 긴 숨을 내쉬었다.
24시간은 후딱 지나갔다. 거기다 연습 몇 번을 하고 주의사항을 들으니, 해는 지고 예민한 감각만이 살아 움직이는 밤이 되었다. 센터에서 내어주는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복면을 썼다. 정문 앞에 서서 팀원들을 쳐다보니 모두 연습 시에 자신과 가장 잘 맞았던 총을 한 자루씩 들고 있었다. 표적으로 능력이 없는 일반인을 만나게 되기를 바라며 차에 몸을 실었다.
- 아…….
얼마나 이동했을까 마츠카와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졌다. 말은 없었지만 오이카와도 마찬가지였다. 짙게 선팅 된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바깥은 신기한 것 투성이였다. 커다란 가로수와 줄지어 길을 밝히는 가로등. 저 멀리 보이는 높다란 건물들과 밤을 잊은 듯 반짝거리는 불빛까지. 눈부신 화려함에 눈을 멀 것만 같다.
- 십 분이면 도착해.
운전대를 잡은 연구원의 말에 오이카와가 창에서 눈을 떼고 눈을 감는다. 점멸된 시야에 어제보다 훨씬 빨라진 속도로 화면 네 개가 자리 잡는다. 금세 오케이 사인을 하고 눈을 떴다. 정신이 다섯 갈래로 갈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나하나 팀원들의 눈동자를 마주치고서 다시 창 밖을 응시했다. 부서진 듯한 건물이 띄엄띄엄 보이고 가로등의 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창문을 약간 내린 채 숨을 들이쉬자 짭조름한 냄새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
말로만 듣던 바다였다.
인이어를 왼쪽 귀에 차고 차에서 내렸다. 바닷바람이 서늘하게 뺨을 훑고 지나간다. 센터 측에서 정보를 주기로는 부두 오른편 끝의 네 번째 컨테이너에서 물건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발소리를 죽인 채 컨테이너 쪽으로 접근했다.
- 자리 잡았습니다.
오이카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들을 태웠던 차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곳을 떠난다. 적당히 먼 곳에 대기하다가 정확히 두 시간 뒤에 다시 올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그 안에 상황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시계를 살피니 표적이 도착하기로 된 시간까지는 대략 15분이 남아 있다. 긴장을 놓지 않은 채 처음 만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달빛에 어른거리는 바다는 그가 서 있는 바닥과 같은 색깔이었다. 물결이 출렁이지 않았더라면 길로 착각해 발을 내디뎠을 법도 하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잔잔한 수평선을 눈에 담았다. 하늘과 바다와 땅은 모두 밤의 색으로 물들어 구분이 어려웠다. 생각하지 않으려 했으나, 카게야마의 실루엣이 그와 겹쳐 보인다. 왈칵왈칵 마음에 세워둔 벽을 넘어 버리니 어쩔 수 없다. 센터로 돌아가게 되면 그에게 세상에서 그와 가장 닮은 빛깔을 찾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다 센터를 떠난다면 그의 손을 잡고 밤바람이 짭조름한 부둣가를 날이 밝도록 걸으리라 다짐했다.
- E.
니시오가 낮은 목소리로 오이카와를 부른다. 귀를 기울이니 예민한 청각을 타고 자동차 엔진 소리가 넘어왔다. 표적이 탄 차량일 것이다. 크기는 일반 중형차 수준. 머릿속으로 수용 인원을 떠올리고 싱긋 미소를 지었다. 대략 1분 30초면 이곳에 도착한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과 눈들이 마지막으로 서로를 점검했다. 때맞춰 차량 바퀴와 부두의 모래가 까끌거리며 마찰되는 소리가 들렸다. 쉿. 숨을 죽인다. 발을 저는 듯 걸음의 박자가 어긋난다. 표적은 하나. 운전기사인지 무거운 발소리도 울린다. 니시오와 사사키가 눈을 맞추더니 스르륵 그들 쪽으로 걸어나갔다. 죽인 발소리 아래에선 모래 한 알도 흔들리지 않는다. 턱. 총구가 머리 위로 겨눠졌다.
- 손에 든 거 내려놔.
- …….
- 아니면 쏜다.
철컥. 안전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난다. 니시오의 행동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깔끔했다. 그러나 표적은 숨을 죽일 뿐 그 어떤 행동도 보이지 않는다. 오이카와가 난감한 듯 미간을 좁혔다.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식하게 손에 쥔 가방을 빼앗을 수는 없다. 표적에게로 시선을 고정하고 감각을 펼치려는데 아주 미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일부러 소리를 죽인, 훈련받은 걸음.
- M!
- 들어와!
오이카와의 외침과 비명에 가까운 표적의 목소리가 동시에 허공을 울린다. 습격이었다. 표적이 타고 온 검은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길게 비쳐 니시오의 시야를 방해한다. 씨발! 욕을 내뱉은 세노오가 니시오를 뒤로 물리고 양손을 사선으로 펼친다. 둥글게 자리를 잡았다. 당황했으나, 늘 하던 대로 빠르게 공격 형태로 전환한다.
- 센터에서 보냈지? 나는 그곳의 진실을 알고 있어!
일반인이기를 바랐으나 표적은 아무래도 능력을 다룰 줄 아는 것 같았다. 그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친다. 오이카와의 눈동자는 일말의 동요도 없이 상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빠르게 그를 관찰한다. 표적은 희끗희끗한 머리를 깔끔히 넘긴 채 옆에 선 큰 체구의 남자에게 몸을 기댄 상태였다. 추측했던 것처럼 다리를 절고 있다. 나이는 최소 50대 중반으로 보이며, 그 주위를 감싼 이들보다 연배가 꽤나 높은 듯했다.
- 맛층!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M’도 ‘마츠카와’도 아닌 별명을 불렀다. 마츠카와가 펼친 둥근 결계가 몸을 감싸는 게 느껴진다. 그로써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되자마자 바로 니시오와 사사키를 앞으로 내보냈다. 표적은 오이카와에게 하고픈 말이 있는 듯했으나 오이카와는 그를 믿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지난번 만났던 표적도 —센터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건 아니지만— 진실을 운운하며 말을 붙였으나 결국은 호시탐탐 역공격 할 기회만을 찾고 있었으므로.
능력을 쓰는 상대와 진심을 다해 맞붙는 건 처음이었다. 상대의 능력이 약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강한 것도 아니었다. 마츠카와의 결계는 제기능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고, 니시오와 사사키의 공격은 야차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마저 빈틈을 파고드는 공격이 있다면 그건 모두 세노오의 손을 통해 날아간다. 오이카와는 상대를 궁지로 몰아갔다. 하나하나씩 목을 쥐어 결국엔 팀을 붕괴시킨다. 동료의 부상이나 죽음은 팀의 결속력을 약화시키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가 노리는 것은 죽음에 관한 두려움과 공포. 그것은 개인을 한없이 이기적인 존재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사키의 총알이 A로 짐작되는 이의 어깨를 꿰뚫었다. 고통에 찬 신음이 먼 바다에 메아리친다. 처음이 어려울 뿐, 한 번 물꼬가 트이고 나면 그다음부턴 모든 일이 척척 진행된다. 성별도 체구도 모두 다른 그들이 전부 부두에 힘없이 쓰러지기까지 긴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계획에 없던 목숨을 다섯 개나 빼앗았다. 오이카와가 짜증 난 표정으로 표적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들이민다. 이미 두 명의 사람을 죽인 총구에서 식지 않은 열기가 피어오른다.
- 나를 놓아줘! 너희는 센터가 뭐라고 생각하지? 그곳의 모든 건 거짓이야! 나는 죄가 없,
탕. 오이카와가 방아쇠를 당겼다. 오이카와의 옷을 목숨줄처럼 붙잡은 그는 애처로워 보였다. 긴 한숨을 쉰다.
그런데? 죽기 전에 애처롭지 않은 사람이 있나?
번뜩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빛났다.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알은 남자의 관자놀이를 아무 무리 없이 뚫었다. 푸딩을 뜬 숟가락처럼, 온전함을 앗아간다. 그의 심박이 멎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방금까지 애절하게 그를 붙잡던 손은 차게 식어 있었다. 마음을 먹는 것과 실제 행동 사이에는 큰 괴리가 존재한다는 걸 깨닫는다. 비틀거리는 발걸음 뒤로 굳어가는 피가 눅눅한 도장을 찍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피를 밟아야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마침 도착한 차에 몸을 실었다.
오이카와는 처음 사람을 죽였고, 이후로도 네 번을 더 실전에 투입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각은 무뎌졌다. 위험한 상황이 닥치고 몸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늘어가며 더 이상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대한 위화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듣기로는 카게야마가 몇 번 실전에 투입됐다고 했다. 연습에 공을 들이느라 시간이 어긋나, 그동안 그를 만날 수 없었다. 이럴 때면 같은 반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렇게 야속할 수 없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실전에 나가는 날이면 괜한 걱정에 반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재능으로 똘똘 뭉쳐진 강한 이라는 걸 충분히 잘 알고 있으면서도.
- ……아.
- 으응…….
얼굴이 보이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달려갔다. 쾅 부딪혀 자연스레 밀려나려는 몸은, 꽉 붙들고 놓치지 않는 팔에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카게야마가 작게 신음을 흘린다. 오이카와는 어린애처럼 말꼬리를 늘리며 흡족한 얼굴로 그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그새 더 자랐고 더 단단해졌다. 그에게서만 맡을 수 있는 향을 코로 힘껏 들이마신다.
- 너 같은 색이었어.
- …….
- 바다를 봤어.
- 저도 보고 싶었어요.
일렁이는 눈동자에 파도가 친다. 서툰 손길이 딱지가 앉은 이마를 살살 쓰다듬는다. 애정과 걱정이 잔뜩 담겼다. 가슴이 벅차올라 뻐근하다. 죽을 것 같았다.
- 별 일은 없지?
- 네.
- 다치지는 않았고?
- 오이카와상이 저한테 할 말입니까?
툴툴거리는 얼굴이 꿈만 같아서 양손으로 마구 더듬어 보았다. 뺨을 만질 때는 가만히 있더니 코를 꼬집자 인상을 쓰고, 입술을 쓰다듬으면 긴장한다. 그의 반응 하나하나는 늘 놀라웠고, 늘 오이카와를 들뜨게 만든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신을 만난 신자 같은 시선이 오랫동안 카게야마의 얼굴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눈을 마주치면 숨이 멈출 것 같아 떨리는 마음을 아래로 눌러놓고 나서야 조심스레 눈동자를 굴렸다. 마침내 마주친 짙푸른 눈동자도 그를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꼭 같은 크기의 사랑이, 끝을 모르고 몸을 부풀린다.
-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
- 잘…… 지내고 있어요. 선배들도 잘 해주시고, 히나타라는 애랑은 이번에 처음 맞춰 봤는데 잘 맞았어요.
- 선배,
그 말 되게 평범하게 들린다. 우리가 다른 사람하고 다를 바가 없다는 것처럼 들려.
서글픈 얼굴은 여러 번 실전에 나갈 때마다 마주하는 도시의 건물과 일반인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다르다는 사실은 가끔 그에게 지독한 갈증을 느끼게 만든다. 저무는 해에, 짙은, 다자색을 띠는 눈을 오른손으로 가렸다.
- 다를 바 없어요.
- …….
- 오이카와상.
눈을 가린 손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카게야마는 단순했다. 유달리 깊은 생각을 하지도, 많은 걱정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 그와 달리 오이카와는 너무 깊게 생각한다. 목적지를 보고 수많은 길을 분석한다. 그러나 그에 휘말려 가장 단순한 길을 놓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꼭 이처럼.
- 토비오쨩. 지금 오이카와씨가 망할 토비오쨩 때문에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말이야.
- ……?
- 키스해주면 살아날지도 몰라.
가려진 시야는 역설적이게도 눈부시게 밝다. 수많은 길과 수많은 고난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등불을 든 카게야마가 길을 수놓고 있었다. 그의 발자국마다 찬란한 빛이 피어난다. 오이카와가 빙그르르 미소를 지었다.
*
어찌할 수 없는 아쉬움이 그를 감싼 건 그 후로 약간 뒤의 이야기였다. 사랑한 시간들을 후회하진 않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영원히 그를 지켜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영원히 그와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끄러미 카게야마의 얼굴을 쳐다봤다. 날 선 얼굴이 메말랐다. 그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지만 숨은 내쉬고 있었다. 들을 줄 알았는데, 내 이름. 슬픔이 맴도는 얼굴은 어둠 안에 있었다. 오직 쓰러진 이의 몸만이 달빛 아래 푸르게 빛난다.
“미안해, 미안해 토비오…….”
미약한 흐느낌이 스민 목소리 끝에 오이카와가 검을 고쳐 쥔다.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붙잡고 한 번 더 그것을 들어 올렸다. 아래로 맥없이 흐르는 붉은 피를 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축 늘어진 몸을 끌어안는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장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오이카게] 밤의 강에는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6 (0) | 2018.07.12 |
|---|---|
| [오이카게] 밤의 강에는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5 (0) | 2018.06.30 |
| [오이카게] 밤의 강에는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3 (0) | 2018.05.22 |
| [오이카게] 밤의 강에는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2 (0) | 2018.05.16 |
| [오이카게] 밤의 강에는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1 (0) | 2018.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