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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 밤의 강에는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5


정오 글


약간의 잔인한 표현이 있습니다. 또한 하이큐 작중 등장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


밤에 달보다 더 빛나는 것이 세상에 있으리라고는 의심도 하지 못했다.

고층 건물과 반짝거리는 불빛이 눈동자에 색색이 비친다. 이곳의 밤은 낮보다 더 휘황찬란하고, 도무지 잠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도심이라고 했다. 수많은 유동인구가 모여드는, 밤에 더 아름다운 색들의 도시.


- 이곳의 사람들은 낮에 자고 밤에 깨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밤이 이렇게 밝을 리가 없는데. 누군가 꺼낸 말은 결코 장난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들이 숨어든 뒷골목 위에 자리한 싸구려 간판이 찌르르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오이카와의 시선이 그리로 향한다. 간판은 타닥거리며 두어 번 깜빡이더니 눈부신 분홍을 만들었다. 커다란 플라밍고다. 자리한 어둠 밖으로 팔을 내밀자 진한 분홍색이 그 위를 물들였다.


- 자자, 이동하자고.


오이카와는 왠지 뜨끈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은 팔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곧 센터를 나와 이런 곳을 걸어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심장이 간지럽다. 낯선 기분은 그가 몇 분쯤 이동해 호텔을 겸한 빌딩 안으로 발을 들일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pm 11:23

내일 아침에 당장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오이카와가 덜 마른 머리를 대충 쓸어 올리며 침대 헤드에 허리를 기댔다. 바로 옆 침대의 주인은 갈색 머리에 각진 안경을 쓴 익숙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고개를 갸우뚱거린 오이카와가 남자의 벗어둔 겉옷을 쳐다보았다. 마나베. 이름표에 적힌 이름은 그가 알던 이름이 분명한데 어째 영 그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가볍고 따듯했던 예전의 이미지와는 확연히 달라진 무거운 분위기가 그의 주변을 포진하고 있었다. 이번 임무에서 그는 좀처럼 입을 여는 법이 없었고 지금도 말없이 검은 이어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 이거, 이어폰 아니고 인이어.
- 아…….


눈이 마주쳤다. 마나베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들고 있던 이어폰을 흔들었다. 분명 웃음이 맞는데, 어쩐지 우는 것만 같은 표정이다.


- 신기하지? 나머지 애들하고는 다 연결했는데 너는 씻고 있길래. 연결 좀 해줄래?
- 센터에서 나눠준 인이어는요?
- 써. 그건 그냥 장난감 같은 거.


마나베가 협탁 위에 올려놓은 검은 인이어를 가리켰다. 센터에서 첫 실전 투입 때 나눠주는 것으로, 마나베의 것은 겉이 일그러져 있었다.


- 왜……?
- 폭발에 휘말렸어.
- 저 정도면 크게 다치셨을 것 같은데…….


오이카와의 말에 마나베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할 뿐 별다른 대답이 없다.


- 불 끌게.


마나베가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호텔방의 불을 껐다. 방 안이 익숙한 어둠으로 가득 차자 창 밖의 불빛들이 어슴푸레 안을 밝혔다. 자꾸만 눈이 갈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이다. 가만히 빛나는 불빛들이 마치 어항의 금붕어 떼처럼 오이카와의 눈 안에서 헤엄친다. 작은 간판들과 더 작은 자동차들 그리고 더 더 작은 사람들. 그곳에서 가장 작고 연약한 주제에 제각기 하루의 끝을 잡고 큰 것들을 일으켜 세운 존재들.


- 아름답지?
- 네.
- 그래…….


마나베의 목소리가 잠 기운에 젖어 나직이 스러졌다. 하품이 나왔다. 아침 임무는 10시에 시작이니 이제는 자야 내일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눈꺼풀이 감겼다 뜨여지는 속도가 확연히 준다. 이내 묵직한 수마에 온몸이 젖어들었다.


- 두 시간 딜레이 됐대.
- 네?!
- 배 고픈데…… 제가 주전부리 좀 사 올까요?


긴장이 풀렸다. 모두가 앓는 소리를 내며 땅에 널브러졌다. 그러고 보니 아침도 먹지 못하고 표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날아오는 지갑을 잡아챈다. 편의점을 핑계 삼아 이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다시 호텔로 이동하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쳐다보곤 발을 옮겼다.

도시의 아침은 신선했다. 밤보단 사람의 수가 확실히 줄어들었지만 대신 아침 특유의 묘한 활력이 넘쳤다. 흥미로웠다. 같은 행정구역 상에 있는 게 분명한데 걸음마다 나타나는 건물의 모습이 달라진다. 잠깐 걸음을 멈추고 그것을 감상했다. 도시의,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아침. 밤에 났던 술과 튀김류, 묵직한 음식의 냄새보단 어딘가 살갑고 조촐하고 가벼운 냄새가 길목마다 풍겼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자 코가 찌릿했다. 정체를 모를 그리움이 그를 먹먹하게 적셨다.


[곧 센터를 나갈 수 있겠는데요?]
- ……?!


위장용으로 지급받은 이어폰인 줄 알았더니 마나베의 인이어인 모양이었다. 어제 제 기기와 연결해놓고 그대로 주머니 안에 넣어버린 것 같았다. 이마를 짚으며 인이어를 빼려고 하다가 흥미가 생겨 다시 귀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때까진 그랬다. 모든 게 잘 될 것만 같았다. 마나베의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응, 센터……. 하하, 센터……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센터?! 센터를 나간다고? 거기가 어떤 곳인 줄 알아?!]
[마나베상. 무슨…….]


악에 받친 마나베가 절규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이카와는 온몸의 사고 회로가 정지하는 것을 느꼈다. 크게 뜨여진 눈동자가 혼란 섞인 암흑으로 물든다.


[마스미! 그 애가 죽었어! 센터에서 그 애를 죽였어! 이유모를 폭발사고, 하하하……. 일그러진 인이어를, 화상을 입어 다 죽어가는 마스미의 팀원에게 받았을 때 내가! 내가, 무슨 기분이었는지 알아?]
- 말도 안…… 돼.


하늘 높이 날던 심장이 땅으로 전력을 다해 떨어진다. 잘 달리던 열차는 덜컥거리며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하고 있다. 눈 앞이 노래졌다. 억지로 발걸음을 옮기지만 보도블록은 찰흙마냥 마구 휘고 시야는 몇백 개로 쪼갈라진다. CCTV 범위에서 벗어난 길의 담벼락에 가까스로 등을 댔다. 차가운 시멘트가 금방이라도 액체가 되어 회색으로, 다시 회색으로 그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그 애는 죽었어. 하하……. 나 때문에, 내가 죽인 거야…… 내가 약점을 만들어버렸어! 내가…… 어떻게 알았을까. 센터에서 우리를 도청하고 있을 거라고, 내가, 어떻게……!]
[도…… 청이요?]
[나는 돌아가지 않아. 더 이상 센터를 믿지도 않아. 그 잔인한 공간에 내가 어떻게 돌아갈 수 있겠어! ……그곳에서, 마스미가 울부짖어. 불에 활활 타오르면서…… 마스미가…… 마스미가……]
[왜…….]
[……우린 어차피 죽어. 이곳을 떠나면 정부로 보내져. 그리고 그들의 사익을 위해 움직여. 영웅? 히어로? 다 거짓말이야! 개인 군대나 다를 바 없어. 우린 언제든 버릴 수 있는 패. 소모품. 그거 알아?! 우리가 지금껏 표적으로 삼고 죽인 그 수많은 사람들! 전부 다…… 죄 없는 사람들이야……! 그럼 진짜 죄가 있는 쪽은 어딘지 알아?!]


광기가 스민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붙잡을 것을 찾으려 담을 마구 더듬던 오이카와가 맨들 거리기만 할 뿐 지지할 틈이 없는 그것에 결국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천천히 들어와도 인정하기 힘들었을 이야기는 보가 사라진 강물마냥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희게 질려 흐릿하게 변하는 시야에 눈을 감았다. 카게야마의 실루엣이 떠오른다. 상상 속의 그는 손 쓸 새도 없이 불탔다. 오이카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불타올랐다.


[세, 센터……]


쾅!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에 정신이 든 오이카와가 마구 소리를 질렀다. 안 돼, 안 돼, 안 돼! 허겁지겁 인이어를 귀에서 뽑지만 폭발음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다시 한번 귀를 때렸다. 곧 관절이 분리될 듯한 오래된 마리오네트처럼, 오이카와의 몸이 돌아간다. 삐걱거리며 뜨여진 눈 앞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은 그가 팀원들과 밤새 머물렀던 호텔이었다. 후두둑 떨어지는 잔재에 무게를 이기지 못한 윗부분이 꺾여 주변에 있던 상가를 덮쳤다. 불이 이글거린다. 아…… 아…… 흐아…… 아아아! 고통에 절은 외침은 언어의 형태를 띠지 않는다. 눈물이 각막을 수없이 훑고 지나가지만 불바다가 된 건물은 여전했다. 마나베가, 팀원들이 죽었다. 어쩌면 호텔에 머무르고 있었을지도 모를 수 없는 민간인들이, 이유도 알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내일의 미래를 꿈꿨을 수많은 생명들이, 센터의 손 안에서 꺼져 버렸다.


- 기기 사용 오류로 인한 사고라고 한다.


거짓말.


- 놀랐지? 황급히 달려갔지만 이미 모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신발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울지 않으려 깨문 입술에서 눈물 대신 피가 흘렀다. 떨리는 손을 깔고 앉았다.
만약 제가 주전부리를 사 오겠다고 나서지 않았더라면 저는 어떻게 됐을까. 그들처럼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지지 않았을까.

죽지는 않을까?

열이 오른 머리가 뜨겁게 굴렀다. 인이어는 센터에서 나눠주는 것과 같은 모양이고, 대화를 듣고 놀란 것도 CCTV 범위 밖의 일이다.

죽지는 않겠지.

스스로가 혐오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오이카와가 콧방울에 매달린 콧물을 손등으로 쓸었다. 눈의 흰자가 붉게 물들어 금방이라도 피를 짜낼 것 같았다. 화가 난다. 함께 차에 탄 연구원들을 모조리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싶었다. 과부하가 걸린 머리는 수없이 그 광경을 시뮬레이션한다. 목을 꺾고, 관자놀이를 부수고, 다트를 눈알에 박아야지. 폭탄을 터뜨린 이는 죽여 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도 절대 죽이지 않아야지. 손톱을 하나하나 뽑고 그 자리에 소금을 뿌려야지. 같은 자리만을 몇 번이고 걷어차, 평생 사라지지 않을 멍을 만들고…….

그러나 그는 나약하다. 아직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비명이 감도는 귀를 양 손바닥으로 짓이기듯 막았다.

전부, 그가 또는 동료들이 행했던 짓이었다.


- ……오이카와.


친구들은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살아 돌아와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온몸이 염전이었다. 한 방울의 뜨거운 체온에 물이 되어 범람한다. 몸에 있는 수분이란 수분은 다 짜낼 것처럼 울었다. 마나베에게 도청기 이야기를 하는 게 맞았을까. 모든 게 죄스러웠다. 이곳에서 도망치면 어떨까 짧은 시간 동안 수없이 고민했다. 그러나 그에겐 사랑하는 이들이 있었고, 센터는 그것을 약점이라고 불렀다.


- 오이카와상! 다, 다치신 곳은…….


카게야마는 애처럼 엉엉 울었다. 목소리가 새어나갈지 모르는데도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에게 달려왔다. 품에 안긴 체온은 열이 올라 데일 것처럼 뜨거웠다. 지금 카게야마 토비오는 오이카와를 살게 하는 실낱같은 희망임이 분명했다. 뜨거운 열기에 뒤섞인 눈물과 걱정, 안타까움과 일말의 다행이라는 생각이 그대로 그에게 전해졌다. 덩어리 져 흘러넘치는 감정의 혼합물은 전부 그의 사랑이다. 그가 상처받지 않도록 양 팔로 모두 끌어안고 가슴 안에 담아두고 싶었다. 시작이 그였으니 끝도 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해왔다. 삶이 가진 유한의 끝에서는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뒀던 사랑에 잠식돼 죽고 싶었다. 사랑의 호상湖上 위에서 마지막 숨을 맞이한다면 그보다 더한 호상好喪이 어디 있을까.


- 울지 마, 토비오.
- 오이카와상이 죽, 죽, 그, 그렇게 된 줄 알고…… 숨이, 숨이, 안, 안…….
- 숨 고르고. 응? 오이카와씨 하나도 안 다치고 멀쩡하게 돌아왔잖아.


눈물을 먹고 반짝이는 눈동자에 오이카와가 어른거렸다. 흐트러진 홍차색 머리에, 약을 탄 듯 짙은 다자색의 눈동자. 그 안엔 또 카게야마가 있고 그 안엔 또다시 오이카와가 있을 것이다. 한 구석이 터질 듯한 표정이 얼굴을 맴돌다 사라졌다. 습관처럼 카게야마 머리로 향하는 손을 억지로 붙잡았다. 카게야마는 확실히 한 치의 오류도 없이 오이카와를 사랑했다.


- 키스해 주세요. 네?
- ……오이카와씨가 감기가 걸렸을지도 몰라서.


열 오른 얼굴로 사랑을 갈구하는 카게야마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눈동자가 엇갈렸다. 내던져진 마음에선 쩡 쩡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 와중에도 감기에 걸리면 안 된다며 이마에 손을 올리는 카게야마가 보였다. 중얼거리는 입술은 쉼 없이 물어뜯고 씹어댄 탓에 다 부르터 있었다. 숨이 주춤한다. 한 번은 입 맞춰도 되지 않을까 부추기는 사랑을, 그는 끊어내야만 했다.


- 오이카와상?
- 아, 응.
- ……힘든 일 있으면 저한테 다 얘기하시기예요.


카게야마가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오이카와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그의 새끼손가락에 제 새끼손가락을 엮었다. 그래. 약속. 오이카와는 지킬 수 없을 약속을 입 밖으로 꺼냈다.

사랑을 끊어냈다. 감정으로 인한 죽음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는 일주일을 꼬박 앓아야만 했다.


그런 오이카와가 먼지가 묻은 겉옷을 털다 주머니에서 오래된 녹음기를 발견한 건 이후에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였다.

카게야마가 나카무라라는 이와 사귀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건 그 이후로도 조금 더 뒤.

사랑은 끊는다고 끊기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


사각거리며 잘 마른 해가 발끝부터 천천히 몸을 덥혔다. 배가 뜨거운 걸 보니 배에 이불이 꼼꼼히 덮인 것 같았다. 눈을 뜨기가 싫다, 생각을 하자마자 현실이 물 밀듯 밀려들어왔다. 며칠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한 몸에 한계가 온 듯 온 근육과 뼈마디가 쑤셨다.


“……?”


벌컥 눈을 뜨자 예고도 없는 햇볕이 눈 위로 흐트러졌다. 채 인상을 쓰기도 전에 단정한 손바닥이 눈을 가린다. 상황 파악을 하려고 돌아가는 머리는 잠에 취해 어지러웠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자 잠 기운이 그득 묻어나는 목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었다.


“좀 더 자. 날이 이래서 그렇지 아직 새벽이야…….”
“……!”
“응, 알겠어. 네 옆에서 자도 된다는 거지? 고마워. 내 침대 넓거든…….”


웅얼거리다 입을 다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정말로 피곤해 보였고, 결정적으로 그 자신이 너무나 지쳐 있었다. 햇살을 가리느라 주황빛이 도는 손바닥을 응시하다 다시 눈을 감았다. 일어나서 일을 해결해도 늦지 않으니.


“……어디 가.”


목소리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오이카와 토오루’였다. 느릿느릿 꿈결 같았던 시간은 꿈이 아닌 현실인 모양이었다. 어둠이 검다. 밤은 꽤 깊었을 것이다. 원래 있던 곳으로 가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


“실례했습니다. 여기가 당신이 계신 곳일 줄은 몰랐어요.”
“어디 가냐고, 물었어.”


이젠 발소리를 죽일 생각도 없이 문을 향해 걸어나가자 들려오는 오이카와의 말투가 딱딱했다. 단연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투였지만 그를 보지 못했던 햇수를 생각한다면 크게 놀랄 것도 없다.


“……찾아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은 못 나가.”
“보초가 문제라면 창문으로 뛰어내려도 상관없습니다.”
“토비오. 난 지금 너한테 명령하고 있어.”


고개를 돌렸다. 오이카와의 눈은 밤에도 늘 저처럼 형형히 빛나곤 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때보다 더 깊어지고 더 속내를 읽기 어려워졌다는 것 정도.


“오이카와상.”
“안 잊었네.”


끈질기게 저를 좇던 눈동자에 연륜이 서렸다. 나이를 먹어 얻어진 것이 아닌, 오랜 기간 했던 고생이 만들어놓은 흔적이다. 오랜만이지만 여전히 불편했다. 그때 한참 아래에 있던 눈높이가 이제 제법 엇비슷했으나 그렇다고 과거의 일까지 모두 어영부영 흘려보낼 건 아니었다.


“그래도. 못 나가.”


카게야마 토비오. 이제 그의 눈동자는 확실히 바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어두컴컴한 빛깔은 완전한 검정이 되지 못하고, 간추린 감정은 바람을 타고 출렁거린다. 대양에 띄운 조각배처럼, 위태로운 실루엣이 눈동자 중앙에 자리 잡았다. 오이카와가 그를 막아섰다. 떼꾼한 얼굴은 금세 쓰러져 잠에 든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어 보였다. 예전과 같아 보이지만 이모저모 따져보면 그는 많이 성장했다. 그에 방해가 됐다고 한다면 기꺼이 그의 곁을 떠나 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라도 해 줬더라면.


“내가 죽였어. “
“뭐를 말입니까.”
“너를.”


지금 저랑 장난하십니까? 제가 아직도 그때……! ……그래요. 됐어요. 비켜 주세요. 나갈 겁니다.

방 안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둘 중 누군가의 이와 이 사이에서 뿌드득 어떤 것이 어긋나는 소리가 났다. 걸려 있지도 않은 시계가 째깍째깍 흘러간다. 12를 지나가면, 또 12만큼의 시간이 지나겠지만, 결국엔 다시 12로 돌아오는. 지금 그들과는 완벽히 대치되는 이론이.


“토비오.”
“…….”
“나는 세 번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아. 네가 잠들어 있던 거의 하루 내내,”


거기까지 말하다 말을 돌렸다. 오이카와는 피곤해 보였고 무슨 이유에선지 더 이상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땅에 내렸던 시선을 끌어올렸다. 카게야마의 눈동자는 형형히 빛나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오이카와에게 뛰어들 것 같은 모양새였다. 오이카와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저런 눈이라면 지겹도록 봐왔다. 저를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는, 오랜 분노가 담긴 눈동자.

그리고 그는 그 눈동자들이 어떻게 감기고 스러졌는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손으로, 그의 칼로, 그의 명령으로, 그의 능력으로.


그래도 너한테서까지 그런 표정을 받으면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파.


“오이카와상!”
“너 지금 나를 지나가서 다른 조직에 찾아간다고 한들, 그쪽에서 널 도와줄 거라고 생각해? 네가 왜 죠젠지에 다테를 찾아갔는지 잘 알아. 그나마 네게 호의적이기 때문이겠지. 그럼 말이야. 토비오. 왜 하필이면 ‘후타쿠치 켄지’가 아닌 ‘모니와 카나메’가 널 맞았는지, 그리고 그가 왜 너를 여기로 보냈는지, 전혀 추론이 안 돼?”
“……젠장!”


당신이 여기 있단 걸 알았으면 안 왔을 겁니다. 독기가 빠진 목소리는 바람에 날릴 듯 가벼웠다. 오이카와가 피식 어그러진 미소를 지어 보인다. 오른손을 들고 카게야마의 어깨에서 머뭇거리다 조금 더 욕심을 내어 보기로 했다.


“그럼 좀 더 자고 얘기할까? 정말 나 아주 오래 못 자고 있었는데.”


화사한 미소엔 꾸밈이 없었다. 카게야마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대신 침대 쪽으로 먼저 발을 옮겼다.


“…….”


밤의 빛깔들이 카게야마 주위를 맴돌았다. 언젠가 그에게 선물하고 싶던 풍경이었다. 비록 그 언젠가가 지금이고, 상황이 많이 뒤틀린 뒤라는 건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주먹을 쥐었다. 조금 전 만져본 그의 매끄러운 머리카락이 자꾸만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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