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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 밤의 강에는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6
정오 글
***
손톱이 자랐다. 손끝을 넘어선 길이는 능력을 쓰기에도 형상화한 칼을 잡기에도 거추장스럽다. 다듬고 싶지만 그렇다고 남의 침실을 함부로 뒤질 수도 없는 일이라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오이카와는 어째 영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오바죠사이…… 보스가 누군가 했더니.”
한번 거슬린 것은 끊임없이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머리에서 맥박 뛰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익숙한 두통이 찾아올 모양이었다. 약 먹는 건 별로였지만 약을 먹지 않아 느껴질 고통은 그것보다 훨씬 별로였다. 침대에서 일어나 신발을 찾으려 주위를 둘러보자 보이는 게 하얀 슬리퍼밖에 없다. 오이카와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그를 찾으러 나갈 수밖에. 바닥에 발을 디디자 대리석 특유의 찬 기운이 몸에 스며들었다.
“……진짜 이상한 사람.”
정면으로 보이는 전신 거울에 그의 몸이 반사된다. 신경도 못 쓰고 있었는데 옷이 갈아 입혀져 있었다. 빤 지 일주일이 훨씬 넘은 옷에서 나던 퀴퀴한 냄새 대신 향긋한 섬유 유연제 냄새가 났다. 넉넉하게 내려오는 하얀 반팔과 편안한 반바지. 익숙해지면 안 되는 기분이다. 반팔을 가슴까지 걷어 올렸다. 얼기설기 상체에 무늬를 만든 상처들은 그를 늘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하아. 한숨이 잘게 흩어졌다.
“사장님. 저,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한 자리,”
“기다리시죠.”
저번에 왔던 남자와 같은 당에 몸담은 걸로 아는데. 판이 점점 커진다. 꼴에 제 1당이라고 밀어주지 않기엔 리스크가 있고, 그렇다고 밀어주기엔 뒤가 구리다. 손가락으로 이해를 따져본 마츠카와가 수장 자리에 앉은 남자를 아무 말 없이 쳐다봤다. 그는 얼굴에 별다른 표정을 띄우지 않고 있었다.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도 말을 꺼내지도 않은 채 오직 그의 눈만을 직시하고 있다. 위압감이 흐르는 붉은 눈동자. 애써 그의 눈을 피하며 남자가 테이블 위에 올린 건 자주 보던 검은 가방. 그것도 두 개를 가져왔다. 흥미로운 눈으로 장면을 관찰하고 있는데, 오이카와가 갑작스레 남자의 말을 끊는다. 잠깐 고민하더니 마츠카와에게 눈짓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가 봐도 여유로워 보이는 움직임이 매끈하다.
“저…….”
“입.”
다물어. 낮고 미지근한 목소리가 띄엄띄엄 흘러나왔다. 손끝으로 문을 톡톡 두들겼다. 어떤 이유든 간에 오랜만에 즐거워 보이는 그를 방해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나른한 표정으로 벽에 등을 기댔다.
“토비오.”
발소리가 급해졌다. 혹시나 해서 가까이 뒀던 이어폰에서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마자 머리가 하얘졌다. 왁스로 잘 세워놓은 머리카락이 부스스 그가 내는 바람에 흐트러진다. 찾았다. 이리저리 경계를 하며 움직이는 카게야마의 등을 덥석 끌어안았다. 움찔. 놀란 등과 가슴이 바짝 맞닿아 뜨겁다.
“나중에 설명해줄 테니까 지금은 방에 좀 있어.”
“아, 그. 저기,”
“어디야.”
조금 뜨거워진 손바닥이 카게야마의 관자놀이 위를 덮었다. 지그시 누르자 웅웅거리며 심장 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괜찮은 감각이다. 시선을 약간 올리면 마주치는 홍차색 눈동자를 뚫어져라 응시하자 오이카와의 귀 끝이 장밋빛으로 물들었다. 제 앞에서는 영혼을 다해 솔직해지는 사람. 저물지 못한 감정이 여전히 그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옅은 한숨과 함께 카게야마가 두 눈을 감아 시야를 차단했다. 걱정과 다정함이 절반씩 섞인 목소리가 단호하다. 질끈 눈을 감지 않아도 그를 놓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카게야마의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오이카와가 속속들이 알 리는 없었다. 두통은 그와 헤어지고 난 뒤에 생긴 것이었으므로 더욱이. 그러니 오이카와가 여전히 카게야마를 잊지 않았다는 가설이 들어맞을 것이다. —열몇 살의 카게야마 토비오는 머리가 아플 때 미간을 좁혀 인상을 쓰곤 했다.
“두통. 그리고 손톱을 못 깎은 지 좀 돼서…….”
“들어가자.”
등을 보였다. 한 조직의 수장이 무방비하게 등을 보이고 있었다. 언제든 그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을 만한 실력을 가진 존재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묻어 나오는 신뢰에 카게야마가 고개를 떨궜다. 좀 전까지 오이카와가 누르고 있던 관자놀이가 기분 좋게 얼얼하다. 사그라들었던 두통은 그의 손이 떨어지자마자 다시 불씨를 키운다. 어디선가 들은 말에 의하면 관자놀이 아래엔 태양혈이 지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오이카와의 손바닥이 감싸던 관자놀이 아래에선 늘 두 번째 태양이 지구를 비추고 있었다. 우주에서 저 혼자만 남은 듯한 감각. 그는 필요치 않았다. 저를 덥혀주는 그가, 그때만큼은 제가 살아 숨 쉬는 우주 그 자체였기 때문에.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곳에선 늘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었다.
“손톱깎이 여기. 물은…… 내가 말을 안 했나 보네. 저기 누르면 뒤에 냉장고 나오고. 두통약은 여기.”
“아……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면서도 입 안으로 약을 넘기지 않는다. 멈칫했다. 주저하던 손이 답지 않게 방황한다. 건조한 눈동자로 그것을 훑은 오이카와가 약 두 알을 더 꺼내 입 안에 넣었다. 생각해둔 돌아가야 할 시간을 어림잡아 계산하고서 아그작 아그작 이로 으깼다. 쓴 맛에 사정없이 찌푸려지는 얼굴 근육을 감출 생각도 없이 그에게 준 물을 낚아채 목구멍 너머로 넘겼다. 악물었던 카게야마의 잇새에서 뿌드득 조그만 소리가 났다. 제가 그를 경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완전하지 않은 신뢰를, 잃지 못한 버릇을. 하고자 했다면 처음 만났던 순간에, 그리고 지금까지 수백 번도 저를 더 죽일 수 있었던 사람이 내놓은 약조차 곱게 받아 들지 못하는 마음을. 전부 눈치채고 있던 것이다. 나 진짜 바빠서. 나오지 말고 여기 있어줘, 제발? 오이카와가 싱긋 웃음을 던졌다. 그의 몸이 문 밖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카게야마는 들고 있던 약을 물과 함께 삼킬 수 있었다.
“재미있네.”
“예? 하하, 뭐가…….”
“저번엔 의원직을 내놓으라더니, 이번엔 당내 공천에 힘을 실어라?”
“아, 아이 사장님. 제가 감히 언제 사장님께 그런 말을 했습니까.”
의원님, 일이 잘 안 풀리시나 봅니다. 아님 뭐 이젠 그만 하라고 하는데 한 번 정치에 맛을 들이니 발 빼기가 싫어졌나? 툭툭 가벼이 던지는 말의 무게가 무겁다. 오이카와가 슬슬 이야기를 끝내려고 함을 눈치챈 마츠카와가 팔짱을 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의 분위기에 살얼음이 얼었다.
“내가 말이에요. 인도주의자야.”
“아……?”
“그런데 이 동네는 왜 웃어 주고 살려 주면 끝을 모르고 기어오르지?”
형형하게 빛나는 눈에 짜증이 어렸다. 검은 가방을 쳐다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발을 그 위에 얹었다. 브론즈빛 구두에 일그러진 남자의 얼굴이 비쳤다.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돈에 대한 걱정과 아쉬움이 끈적히 묻어 나오는 표정이었다. 오이카와가 상체를 숙여 남자의 턱을 잡아 가까이로 당겼다. 유난히 붉게 물든 눈동자는 잘 숙성된 헤비 럼 빛깔처럼 짙고 축축했다. 마주 볼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았다. 마음이 꿰뚫리는 듯한, 무거워 압사할 듯한 시선을 견딜 수 없다면. 남자의 입술이 색을 잃고 파르르 떨렸다. 세상에서 본 것 중 가장 아름답고 두려운 존재를 어겼다. 그가 거래에 있어서만큼은 신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잊고 있었다. 절대적인 신뢰와 복종만이 주어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힘이었다. 알면서도, 그와 무언가를 저울질하다니.
“죄, 죄송합니다…… 흑, 저, 아, 아이가 있어요. 사, 사장님도 부, 부모님이 있, 있을 텐데, 또 나, 나중에 아이를 낳으시면, 제가 지킬 게 있어서, 으욱, 제발 사, 살려 주십사……”
아이고. 딱 제게만 들릴 정도의 크기로 마츠카와가 한탄했다. 남자가 죽기 두려워 내뱉은 말은 오이카와가 가장 싫어하는 핑계였다. 죽지는 않겠네.
대신 영원히 죽음을 바라게 되겠고.
“이걸 들고 올 바에야 사탕 한 꾸러미가 나았을 거야.”
내가 입이 좀 써. 약을 먹었거든.
“사탕이라면 제가!”
“재밌었지? 나도 너무 즐거웠어.”
“사, 사장님……?”
오이카와가 탁자 위에 거꾸로 올려놨던 종이 한 뭉치를 뒤집에 남자의 눈 앞으로 들이밀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것을 읽던 남자가 파들파들 떨며 눈을 감았다. 죽음이 목전으로 다가왔다.
“시라토리자와, 카라스노…….”
“……잘못했습니다! 사장님! 살려 주세요!”
“개싸움을 붙이려고, 응? 이 쥐새끼 같은 게…….”
남자가 이곳에 오기 전 시라토리자와와 카라스노에도 돈가방을 들이밀었다는 증거였다. 다른 곳은 고려도 없이 굳이 그 두 곳을 건든 이유는 아마도 아오바죠사이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리라.
“사고를 치려면 제대로 쳤어야지. 브로커한테 제대로 된 정보라도 사든가. 쥐덫을 쳐놓고 나를 잡으려고 하면 잡히나?”
제대로 화가 난 오이카와의 눈썹이 삐툴게 어긋난다. 그가 가진 능력이 남자의 몸을 조여 왔다. 폐가 터질 것 같았다. 오이카와의 손가락이 훑고 지나간 턱은 뱀의 그것마냥 소름이 돋는다.
“자아, 이거 봐. 여기 넷 중에 누가 제일 마음에 들어?”
“……흐윽…….”
“신중히 골라야지. 누굴 고르냐에 따라 네가 죽을지 살지가 정해질 텐데.”
펼쳐진 사진에는 이 자리에 있는 오이카와와 마츠카와를 포함해 이와이즈미와 하나마키의 얼굴이 들어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가락이 하나마키를 선택했다. 풉, 푸하하하! 오이카와가 그를 경멸하듯 폭소했다.
“맛층, 따라가.”
“이런 거 좀 하지 말라니까.”
“사, 사장님…… 저분은…….”
“당연히 따라가야지.”
하나마키가 널 죽이지 않게끔 말려야 하니까. 속살거린 오이카와가 그의 목 언저리를 두드렸다. 경동맥이 정확히 지나가는 자리였다. 덜덜 떨리는 몸을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쳐다본 그가 건조한 손가락으로 목에 죄던 넥타이를 약간 풀었다.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은 채 문으로 걸어나간다.
“사장님!”
“거기로는 못 나가.”
“제발! 제가 잘못했습니다! 사장님!”
“못 나간다고……”
하잖아 새끼야. 와드득, 때맞춰 남자의 손 위를 검은 구두가 짓누른다. 마츠카와가 미간을 짚었다. 오이카와가 나간 문으로 곧장 걸어 들어온 채도 낮은 분홍색 눈동자의 주인에게선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기다렸지.”
“그다지…….”
“궁금한 게 많을 것 같은데.”
“……아오바죠사이 수장이 당신인 줄 알았으면 안 왔을 겁니다.”
마음이 뻐끈했다. 오이카와의 눈동자에 스리슬쩍 쓸쓸함이 머물다 사라졌다. 카게야마의 뺨을 쓰다듬고 푸른 머리칼에 손가락을 감아보고 싶었다. 사랑스러운 손에 입 맞추고 건조한 입술을 혀로 핥고 싶었다. 그를 품에 안고 하루를 보내고 싶었고 그와 함께 사랑을 덧 그리고 싶었다. 이뤄지지 못한 사랑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면, 그의 모습은 영원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뭐 하는 곳입니까? 여긴.”
“그냥 적당히 조정하는 곳이지. 이해관계, 주로 돈이나 악연.”
적당히 사람도 죽이고.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말이 하나 더 있었지만 카게야마도 그 정도의 짐작은 한 것 같았기에, 더더욱 말로 옮기지 않는다.
“제가 죽었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설마 이런 상황에서도 저를 놀리실 리는 없으실 테고요.”
“……말 그대로야. 내 선에서 널 처리한 거지. 일 더 커지면 복잡해지고…… 관심이 많더라고. 그러니 잠잠해질 때까지만 부탁할게.”
그의 속내를 들여다볼 것처럼 투명한 눈동자에 애써 거짓을 꺼내 본다.
“제가 여길 못 나가는 이유는요?”
“내 선에서 처리한 거라고 했잖아.”
“오이카와상.”
“토비오.”
장난치지 마세요. 더 이상. 카게야마의 말에는 묵직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것은 오이카와를 카게야마에게서 떼어내 넘을 수 없는 차원 너머로 던져버렸다. 흐트러지기 시작한 머리칼이 숙인 머리를 따라 하나 둘 이마 위를 가렸다. 카게야마의 피 안에 녹아 흐르던 응어리가 주인을 만나려고 목을 간지럽힌다. 더 많은 말이 필요치 않은 상황인 걸 알면서도 아물지 못한 상처들은 자꾸만 그에게 그것을 내보이려고 애를 쓴다. 지금에 와서야 관계를 추스리려고 해도 과거가 바뀔 리 없다는 게 분명한데.
카게야마는 혼란스러웠다. 땀에 갈라진 앞머리 사이로 보이던 다자색 속눈썹, 그 아래 세상에서 가장 빛났던 붉은 눈동자가 있었다. 피에 젖은 달처럼 반짝이던. 태양. 그러나 이제 와서는 모두 헛된 일이다. 상처는 늘리지 않는 걸로 충분하다. 있던 것이 썩어 문드러지든 피가 고이든 이미 너무 오래되었다. 색을 잃은 눈동자가 무리 없이 홍차색 눈동자와 뒤섞였다. 퍽퍽하고 텁텁하다. 목이 메인 건지 가슴이 얹힌 건지 구분할 수 없다. 마른 지 오래된 샘에 뜨거운 물이 돌기 시작했다.
“……부탁드립니다.”
끔찍하다. 기다란 속눈썹에 억지로 삼킨 눈물이 촘촘히 매달렸다. 유리의 파편처럼 부서져 왜인지 어두운 조명 아래 더 반짝거린다.
나는 너에게 상처를 안겼구나. 그냥 네 일부였던 나를 지운 줄 알았는데, 너를 통째로 앗아간 거였다.
“너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
“그래서 그래.”
머뭇거리던 입술이 열리고 생각보다 평범하고 유치한 단어들이 흘러나왔다.
“모두 네가 도망갔다고 생각해. 그…… 때에.”
기억하기 싫은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냈다. 오이카와의 눈이 정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덤덤히 얘기하기엔 아직 너무도 벅차고, 어쩌면 평생을 헤어 나올 수 없을 것도 같은 이야기였다. 의식 위로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왼 팔이 쑤셔오는 느낌이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팔에 남은 잇자국들이 그 날이 꿈도 환각도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폭발로 모두 날아간 시체들이. 조각을 찾았으나 추릴 능력이 없어 마음에 묻어야만 했던 동료들이.
“……괜찮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는 한층 어른스러워졌다. 더 묻고 싶은 것이 있을 텐데도 정한 선 이상을 넘지 않는다. 덮어두고 싶은 일이 있는 것이다. 오이카와가 비식, 건조한 웃음을 흘렸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카게야마가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닌 이유는 그로선 모른 척하려 해도 모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프다. 외면했던 것들을 한 번에 직면하는 기분이란. 서늘하면서 아슬아슬히 뜨거웠던 여름날을 맴맴 울리던 매미가 땅으로 떨어졌다. 쓴 얼굴로 발을 들어 올렸다. 바삭 으깨진 매미는 매미였노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제 흔적을 잃었다. 눈을 감고 있던 사이 매미의 시체들이 우주를 뒤덮었다. 그것들의 죽음을 슬퍼해줄 존재는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주인을 잃은 태양만이 멍하니 그것들을 화장火葬하고 있을 뿐이었다. 쌍방이었던 사랑의 종말. 오이카와가 지키려고 했던 걸 지켜낸 결과는 그것이었다.
“이곳에 머물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다면 시키셔도 좋고요.”
이유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은, 사실이 됨은, 아프고 또 괴롭다.
“가끔 뭔가 부탁드릴 게 있을지도 모르지만 곤란하신 거라면 그냥 무시하셔도 괜찮습니다.”
카게야마의 목소리는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오이카와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건 이익은 하나도 없는 손해뿐인 장사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그는 그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생사조차 알려지지 않은 이가 파닥거리는 심장과 쿵쿵거리는 핏줄과 달콤한 혀끝을 가지고 이렇게 그의 눈 앞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거래는 성사된 것이었다.
“바라는 건 하나예요.”
“—나카무라 와타루.”
그를 찾아달라는 거지. 사막의 모래를 씹는 감각이 오이카와를 뒤흔들었다. 과로로 흐릿해진 눈을 책망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습관적으로 씹은 입술에서 쇠 맛이 나는 걸 보니 결국 찢긴 모양이었다.
“네.”
당신이 내 말을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오이카와 토오루,
당신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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