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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 밤의 강에는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1
정오 글
***
꿈이다.
까르륵까르륵. 종소리처럼 높은 웃음이 태양빛을 받아 부서진다. 더 어린 날들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기억의 처음은 언제나 그 무렵부터였으니, 그곳을 보고 느낀 전부라 말해도 될 것이다. 그곳에선 한정된 시간에만 해를 볼 수 있었다. 몸에 필요한 비타민을 합성할 수 있을 정도로만 주어진 시간이지만, 건물을 나선다는 해방감에 날이야 춥든 덥든 늘 피부 위로 바스락거리는 해가 반갑기만 했다. 해 아래 서 있으면 온전한 포근함을 가진 것 같았다. 피부 아래로 흐르는 힘들도 여기저기로 퍼져나가 잠깐이나마 안정적인 균형을 유지했다. 특별한 것, 더 높은 점수, 더 강한 능력. 강요받던 것들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해를 닮아 찬란한 미소가 스민다. 그 순간을 충분히 느끼기로 했다. 이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암울한 일들이 연달아 펼쳐지리라는 건 수백 번을 꿔왔던 이 꿈의 오차 없는 알고리즘이었기에.
- 안 돼. 안 돼!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제게서 나온 것인지 어디선가 제게로 들어온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냥, 그냥 그는 머리가 아팠을 뿐이다. 뇌가 조각조각 분리되어 각각 다른 명령을 내리고 있는 듯한 고통을 느꼈을 뿐이다. 정신을 붙잡기 위해 입으로 팔을 물었다. 아득한 수렁에 처박힐 듯한 느낌이 들면 그 팔을 아플 만큼 세게 씹었다. 피가 배어 나오면 다른 부분을 물었고, 그곳도 피가 나오면 또 다른 부분을 물었다. 종국에 그의 왼팔이 피와 멍들로 흉하게 얼룩덜룩 물들었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끊임없이 머리가 아프다. 당장이라도 잠들고 싶었다. 눈물을 줄줄 흘리고 아픈 머리의 머리칼을 쥐 뜯으면서도 그는 정신을 잡아야만 했다. 그 자리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 아아악!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이들을 ‘보았다’. 죽을 만큼의 노력에도 죽음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분명 슬픈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의 죽음으로 연결이 하나 둘 끊어질수록 정신이 말짱해지는 걸 느꼈다. 숨 쉴 구멍이 생겨나고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숨을 쉰다는 건 간절함이었다. 너무도 간절하게 살고 싶었고, 딱 그만큼 죽고 싶었다. 모든 게 끝난다면 일 년 내내 해가 비친다는 곳으로 가리라고 마음먹었다. 지독한 밤을 떠나 낮을 맞이하리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미 밤에 얼룩진 몸에게 태양이란 지나치게 밝은 존재였던 것일까.
“허억, 허억…….”
거친 숨을 억지로 고른다. 블라인드를 살짝 손가락으로 걷으니 아직 한밤이다. 쓴웃음을 지으며 콘솔 위에 올려진 물컵을 들어 입 안을 적셨다. 습관적으로 왼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한다. 핏줄을 따라 흐르는 힘은 오늘도 무사히 손끝까지 도달해내었다. 짧은 시간 내에 무언가 달라질 리 없고 상황이 쉽게 최악으로 치닫지 않을 거란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그는 제 왼팔을 유영하는 힘을 느끼지 않으면 늘 어딘가가 불안했다.
“…….”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아 보았다. 오늘 보초를 지휘하는 건 킨다이치다. 밤은 무탈하게 넘어갈 듯했다. 설사 탈이 나더라도 킨다이치가 가진 능력이라면 피해라고는 바꿔 달아야 할 문 값 정도 이리라. 오이카와가 축축이 배어 나온 땀을 닦는다. 침대 헤드에 허리를 기대고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았다. 꿈을 꾼 탓에 머리가 아팠다. 가볍게 욱신거리는 정도지만 현실이 아닌 꿈이 그에게 아직도 이만큼의 영향을 주는 걸 보면 여전히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관자놀이에서 뛰는 맥박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쿵. 세운 무릎에 머리를 박는다.
오이카와가 여기까지 아오바죠사이를 이끌어 온 모든 순간은 다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결과도 확실했다.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애매한 것은 없었다. 그는 뛰어난 ‘눈’이었다. 언제나 모든 것에 확신을 가졌다. 그만큼 자신을 몰아세웠기에 당연했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지금 확신이 들지 않았다. 두 가지의 이유가 나올진대 하나는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확신할 수 없는 것은 나머지 하나였다. 자신의 행동이 혹시 아오바죠사이를 안 좋은 결과로 내몰지도 모른다는 것. 그는 언제나 최선의 결과를 내었다. 언제나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답을 내렸다. 그러나 지금은, 다만 스스로가 이성적인 답을 내놓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너! 정신 어디다 팔고 있는 거야.”
강당 안, 오이카와가 팔짱을 끼고 훈련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선 섬세한 컨트롤과 끊기지 않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에게 지적을 당한 남자가 움찔거리며 그를 바라본다.
“나와 봐.”
능력은 흔한 소설에서처럼 개인플레이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물론 아오바죠사이의 몇몇 구성원들은 개인플레이가 허용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흔치 않은 일일뿐더러 그들이 수없는 노력을 했고 그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얼핏 편해 보일 진 모르나 개인으로 능력을 사용하게 되면 치명적인 단점이 생겨난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누군가는 상대하는 존재에게만 집중할 수도 또는 그가 사용하는 무기에만 집중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순식간에 정신의 균형이 무너진다. 허점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대개 6명 정도를 한 무리로 조직해 집중이 한데 쏠리는 것을 방지하고자 했다.
“잘 봐.”
오이카와가 직접 무리 사이로 스며든다. 무리의 수는 오이카와를 포함해 넷이었다. 존경과 부러움이 반반씩 섞인 시선들이 반짝거리며 그를 응시한다. 그의 등장으로 여러 군데에서 진행되던 훈련은 모두 멈춰 버렸다. 세 명의 가슴팍에 적힌 포지션을 눈에 박아 넣듯 외운 오이카와가 눈을 감았다. 순식간에 정신은 네 갈래로 나누어져 그들에게 집중된다. 다시 눈을 떴다. 강당에 설치된 장치에서 기다렸다는 듯 공격이 휘몰아친다. 그들이 훈련하던 수준보다 한 단계 높은 레벨이었다.
“A! M! 뒤. A, 오른쪽.”
각각 포지션들의 이름을 외친다. 외치는 이유는 단순히 같은 그룹의 구성원들에게 현재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 자세한 것들은 오이카와의 머릿속에서 원하는 이에게로 바로 넘어간다. 생각은 연결돼 있다. 끊임없이 집중을 유지해야 한다. 지금이야 훈련 상황이고, 가벼운 공격들이 주가 된다지만 긴급한 실제 상황에서는 약간의 불순물 같은 딴생각도 커다란 피해를 몰고 올 수 있다. 조금 더 빠르게 지시를 내린다. 오오오! 함성소리가 커진다. 공격이 오기 전에 능력이 쏘아졌다. ‘왜 저기다……?’ 의문을 가진 채로 능력이 쏘아지는 방향을 보면 그에 맞춰 공격 장치가 작동된다. 그는 한 박자 이르게 공격을 무마시키고 있었다. 때맞춰 왼손으로 무엇인가를 형상화한다. 위에서 감상하던 이와이즈미가 공격 횟수를 눈으로 훑는다. 앞으로 남은 횟수는 세 번. A! 오이카와의 외침과 동시에 남은 건 두 번. 그중 하나는 또다시 능력에 명중한다.
“자 이제 멈춰.”
한 번 공격 횟수가 남았음에도 오이카와가 부하들을 멈춘다. 횟수를 알 길이 없는 다른 조직원들은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느라 정신이 없다. 쉿. 오이카와가 오른손 검지를 입술 위에 얹었다. 저희들 수장의 미세한 행동에도 쥐 죽은 듯 강당이 고요해지고, 곧이어 쩌적 소리와 함께 공격 장치 하나를 무엇인가가 꿰뚫는다. 그곳에서 나오려던 마지막 공격은 파르르 푸른 전기만을 남기고 힘없이 사그라든다.
우, 우와아아!
오이카와가 양손을 탈탈 털었다. 왼손으로 만들던 건 작은 칼이었다. 형상화. 형상이 없는 능력을 뭉쳐 물리적 힘을 가할 수 있는 물체로 만들어내는 힘이다. 보통 오이카와와 같은 포지션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데다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존경과 자부심이 흘러넘친다.
“기분 나쁠 정도로 똑똑하다니까.”
하나마키가 투덜거렸다. 오이카와의 행동은 부하들을 격려하는 뜻에서 나온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 내포한 뜻은 오히려 경고였다. 배신이나 이곳을 뒤엎을 만한 싹을 기르는 이가 있다면 미리 그것을 잘라버리라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상대해야 할 거라고. 그는 크게 이를 드러낸 채 경고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이카와의 홍차색 머리가 올라온 땀에 평소보다 짙은 색을 띤다. 금세 곁으로 돌아온 오이카와를 힐끔 쳐다본 이와이즈미가 입을 열었다.
“밤새지 말랬지.”
“……푹 자기만 했는데?”
“속일 걸 속여라. 왜, 그 잔뜩 내려온 눈그늘도 네 능력이냐?”
으응, 못 속이겠네. 빙글빙글 웃음을 흘리는 얼굴이 꽤나 피곤해 보인다. 단정하게 옷매무새를 다듬었지만 허리 부분의 셔츠는 조그만 구김이 져 있었다. 확실히 정신이 둔해졌다. 가끔씩 꾸곤 했던 악몽이 나흘 전을 기점으로 매일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두 시간 이상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수면제라도 먹으면 하루 정도는 편히 잘 수 있을지 모른다. 권할까 고민하던 이와이즈미가 금세 그 생각을 접었다. 오이카와는 이곳의 중심이다. 밤이라고 응급 상황이 생기지 않는 게 아니었고 그런 상황에서라면 약기운에 희미한 정신은 명백한 위험을 이끌 수 있었다.
“이와쨩.”
“싫어.”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거든!”
“나한테 뭐 부탁하려는 거잖아. 그것도 비밀로.”
어떻게 알았지. 놀란 체 눈을 크게 뜬 오이카와가 난간에 등을 기댔다. 말과는 달리 덤덤한 모습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무언으로 가득 찬 짧은 시간이 흐르고 이와이즈미가 한숨을 내쉰다. 말해 보라는 신호였다. 오이카와는 답지 않게 우물쭈물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한다.
“내일, ……아마도 여기로 올 거야.”
“그래. 네가 직접 나서겠다는 도무지! 정신이 나간 게 틀림없는 말 저번에 했잖아.”
“……도청기, 녹음기 전부 꺼줘. 카메라도 다 전원 내려야 해.”
놀란 표정의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를 지켜볼 수 있는 수단을 다 차단하라는 말은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도구마저 다 빼라는 말이었다. 안 돼. 고개를 흔든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오차는 안 돼. 네가 무조건 옳다고 말할 수 있냐고.
“그런 것 같아.”
“아니. 너 지금 정신이 빠졌고 잠 못 자서 제대로 된 판단을 못 내리는 것 같은데,”
“나 멀쩡해.”
미간을 짚었다. 말리고는 있지만 그는 한 번 마음먹은 일이라면 반드시 해내고야 만다는 성격이란 걸 잘 알고 있다. 다시 눈을 돌려 오이카와를 응시했다. 피곤한 얼굴에서도 눈만큼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알았다는 의미로 손을 휘휘 젓는다. 지금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기를. 고개를 숙인 채로 오이카와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데 웬걸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불안함에 고개를 들자 어색한 미소를 짓는 그가 보인다.
“그리고 부탁이 하나 더 있는데.”
“……야 이 새끼야.”
*
그는 반쯤 들떠 있었다. 흥얼흥얼 가사도 잘 모르는 유행가를 곱씹으며 복면을 머리에 맞게 죈다. 오랜만에 착용하는 거라 그런지 어색하다. 거울 너머의 눈을 바라보았다. 저는 달라진 게 없다. 그러나 주변의 것들은 많이도 달라져 있었다. 모두 저와 동료들의 손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그는 어릴 때보다 많이 무뎌져야만 했다. 확실한 건 없었다. 그래서 불확실한 것들을 차마 사랑할 수가 없었다.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은 사랑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 되는 길밖에 없었다. 잃을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 적을수록 덜 상처받는다. 씁쓸한 감정을 뒤로하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아래로, 아래로. 불확실한 것을 맞이하기 위하여.
“누구십니까.”
괜찮은 타이밍이었다. 똑똑. 노크소리에 보초가 문 너머의 누군가에게 말을 붙이고 있었다. 일순 긴장감이 감도는 듯했다. 느릿느릿 벽 뒤에 몸을 숨긴다. 까만 복면 위로 드러난 붉은 눈동자가 눈길이 안 닿는 곳에 놓인 카메라를 응시한다. 꺼졌다.
“돌아가십시오. 이곳은 내일 오전에 열립니다.”
험악한 말투에 밖의 상대는 잠깐 멈추는 듯했으나 개의치 않고 다시 문을 똑똑 두드린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그는 그를 구분할 수 있었다. 쾅! 쾅! 문을 무거운 것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흠칫 몸을 떤 보초들이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밖에서는 몇 번 더 큰 소리가 나더니만 거무스름한 빛을 내는 칼날이 문을 뚫고 들어왔다. 서걱서걱 마치 무를 썰듯이 손잡이 쪽을 도려낸다. 훼손된 문을 발로 차는 모양인지 다시 큰 소리가 났다. 이내 거대했던 문이 앞으로 완전히 쓰러진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보스.”
“뭐?”
“보스를 데려와. 너희한테는 볼일 없어.”
남자의 딱딱 끊기는 듯한 말투는 그림자처럼 깊고 어두웠다. 오이카와가 복면 안으로 서늘한 웃음을 지어낸다. 어지럽다. 쓰러질 것처럼 어지러웠다.
“그분은 이곳에 안 계신다.”
“……괜한 피를 흘리고 싶지 않으니 비켜.”
섬뜩한 음성에 보초들이 총을 꺼내 드는 소리가 난다. 철컥. 장전된 소리에도 남자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다만 아까 문을 뚫었던 검을 얼굴까지 들어 올릴 뿐이었다. 하! 기가 찬 듯한 숨소리가 오이카와에게서 튀어나온다. 남자가 든 검푸른 검은 쏟아지는 달빛을 받아 더 반짝이고 있었다. 시대가 어느 땐데 그걸 갖고 우리를 상대하겠다는 거야?! 비아냥거리는 보초 한 명의 목소리에 남자의 오른발이 차분히 앞으로 움직였다.
“나는 분명히 볼일이 없다고 말했지만.”
스컹, 검이 빛을 발한다. 남자의 움직임은 유연하고 재빨랐다. 아무래도 보초의 목으로 날 선 검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덜덜 떠는 것이 여기까지도 느껴지는 것 같다. 오이카와가 벽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정면에서 마주 본 남자는 온통 검은 옷을 입고 입가엔 저와 같은 검은 복면을 두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감정 덩어리가 터져 나올 듯 북받친다.
“나와.”
보초들이 뒤로 물러서자 그가 검지 손가락을 들어 계단을 가리켰다. 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안에 들어가. 부러 낮게 낸 목소리에 그들이 황급히 몸을 움직인다. 눈앞의 남자는 달리 피를 볼 생각은 없었는지 감정 없는 눈으로 그 장면을 쳐다보고 있기만 했다.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오이카와가 남자에게로 몸을 날렸다. 아무 무기도 쥐지 않은 그에 잠깐 당황한 듯하더니만 제대로 칼을 고쳐 잡는다. 그가 잠깐 숨을 멈춘다. 온몸의 능력을 양손으로 집중했다. 동시에 녹색 빛깔이 도는 푸른 검 한 쌍이 형상화되어 나타났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가 전력을 다해 남자에게로 질주한다. 쨍 높은 소리와 함께 두 개의 힘이 맞붙는다.
“간도 크지. 어떻게 그걸 만들고서 여길, 응?”
“……!”
남자의 눈이 커진다. 동시에 그를 모퉁이로 몰았다. 딱딱한 벽에 남자가 세게 부딪혔다. 달빛을 정면으로 받으니 그의 얼굴이 제대로 보인다. 숨이 막혔다. 빛 아래 눈부신 파란 밤색 눈동자는 몇 년을 보아 온 익숙한 빛깔이었다. 그가 처음 보았던 끝없는 너른 바다 같은 빛깔. 옅은 숨을 내뱉었다. 그가 여전히 저를 기억하고 있다는 게 그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게 한다. 검은 검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손끝으로 복면을 내려보지 않아도 그가 누구인지 너무도 확실하다.
“안녕. 너일 줄 알았어.”
노래처럼 내뱉은 말이 무색하게 왼손의 검을 고쳐 잡았다. 아무 반항도 하지 못하고 저를 바라보는 존재에 약간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일은 확실히 해야 하니까. 오이카와가 검을 들어 남자 쪽을 푹 찌른다. 푸른 눈이 완연한 원을 내보이며 크게 뜨였다. 도무지 볼 자신이 없어 눈을 즈려 감았다. 피 특유의 쇠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부들거리는 팔을 적셨다.
“……토비오.”
지친 몸이 풀썩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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