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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 밤의 강에는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13


정오 글


4화, 5화의 내용을 읽고 오시면 편합니다 :)


***


바보같은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소년이 옥상 한구석에 아무렇게나 피어난 흰 꽃을 잡아 뜯었다. 찍 흐른 진액은 아무렇게나 바지에 문질러 닦고 꽃잎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꽃 한 송이를 통째로 놓아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무거운 게 날아올라 이 센터를 벗어날 수 있을 리 없었다. 가끔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맞춰 하얀 것들을 하나씩 날려 보냈다. 그것들은 흐린 하늘 위로 팔랑팔랑 날아오르더니, 두 개 정도는 소위 눈에 보이지 않을 높이까지 올라간 것 같았다.

하늘 위로 닿았을까?

멍청한 사람. 남자를 질책하면서도 하늘 높이를 바라보는 소년의 눈빛엔 안타까움이 담뿍 묻어 있었다. 마나베. 소년은 그의 성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땀이 오른 손바닥에 붙어 있던 꽃잎 하나를 문득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었다. 입안을 슬쩍 맴도는 풋내 덩어리를 목구멍으로 넘겨 내었다. 상대와는 비교도 안 되게 약했던 한 개인의 끝은 죽음이었다. 그것도 소년이 아니었다면 이 세상 그 누구도 알지 못했을 억울한 죽음. 나약하고, 무능했고, 가진 것이라곤 잃어버린 연인에 대한 어두운 사랑뿐이었던 사람의 말미. 소년은 세상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이성적이었어야지. 그를 질책하는 마음도 정작 그 연인의 자리에 그보다 조금 더 어린 소년을 끼워 넣는다면 할 말이 없어진다. 눈에서 연민을 지워냈다. 소년이 가장 이상적인 답안으로 골랐던 이별에는 치명적인 단점 두 개가 존재했다. 하나는, 연인의 옆자리가 제가 돌아올 때까지 공석이라는 확답을 내리지 못한다는 것. 또 하나는, 완벽한 안전을 보장받지는 못한다는 것. 이별도 결국 일시적인 해결책이었다. 정말 그를 지키고 싶다면 소년은 강해져야 했다. 나약하지도, 무능하지도 않아야 했다. 답은 결국 하나로 귀결되었다. 강한 상대를 이겨야 한다면, 더 강해져야 한다. 저 높이 있는 상대보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 소년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이제 그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일의 전초가 열려야 할 시간이었다.


- 오이카와. 저녁 시간 얼마 안 남았어.
- 그래.


시작은 불에 일그러진 인이어를 들고 왔던 그날이었다. 걷잡을 수 없는 무력감에 겨우겨우 털던 옷의 오른쪽 주머니가 평소보다 아래로 처지는 게 느껴졌다. 이것조차 못 느낄 정도로 정신이 나가 있었다니. 안일했던 자신을 탓하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보았다. 그 안쪽 뜯어진 아래에 들어가 있던 건 네모난 검은 녹음기였다. 오래돼 정확히 녹음 버튼과 재생 버튼밖에 없는 구식 녹음기. 부둣가에서 센터의 진실을 운운하던 표적이 그의 옷자락을 생명줄마냥 잡고 있었던 때를 기억한다. 분명 그때 들어온 것이다. 오이카와가 임시방편 삼아 이불을 두 겹으로 머리에 덮은 뒤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 아프냐?
- …….


이후 들어온 이와이즈미가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이불을 걷어 올렸을 때, 오이카와는 형용키 어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핏발이 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눈에 더 이상 벌어지기 어려울 정도로 벌어져 웃고 있는 입술. 오이카와가 아무 대답 없이 이번에는 이와이즈미까지 이불을 뒤집어씌우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잠시 뒤,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민 이와이즈미도 방금 전 오이카와와 비슷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 너. 어쩔 셈이야.
- 나는 말이야…… 정말, 정말 말이야……


도무지…… ……할 수가 없어…… 용서라는 단어는 감정에 먹혀 말 사이에 긴 간격을 만들었다. 녹음기 안에는 충격적인 말들이 담겨 있었다. 지금까지 지속하였던 그의 의심이 아니었더라면 믿을 수 없을 게 분명했을 말들.

그는 히어로가 아니었다. 뭘 어떻게 노력해도 영원히 히어로가 될 수 없었다.


- 내가…… 뭘 잘못 들은 것 같아.
- ……아냐.


사실을 어떻게 허구로 만들 수 있겠어? 또는 허구를 어떻게 사실로 만들 수 있겠어? 오이카와가 외면하듯 던졌던 질문의 답이 고스란히 녹음기 안에 있었다. 사실을 아는 사람들에게서 세상을 뺏어가는 것. 그리고…… 만약 무지에서 벗어난 이들이 진짜 세상을 찾아 떠나려 한다면,

죽여 버리는 것.


- ……전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아?
- 아니.


……그러면 전처럼 살지 말자. 특별할 것 없는 단어들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완벽한 준비가 필요했다. 잠옷 주머니 안 깊숙이 넣어둔 녹음기를 만지작거리며 그날 밤 오이카와는 쉬이 잠들지 못했다. 센터에서 기르고 있는 건 위협에서 세상을 구할, 소위 히어로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지금껏 표적으로 삼아 죽여왔던 이들은 센터의 진실에 조금이라도 근접한 사람들이었다. 이건 그들이 오롯이 센터의 사익만을 위해 길러졌던 존재라는 걸 의미했다. 대체 누가 이 잘 짜인 시나리오 안에 그들을 집어넣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언젠가 진실이 밝혀지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시나리오를 짠 거라면 그는 아주 영악한 인간임이 틀림없었다. 그들에게 실은 선량한 사람들을 죽이게 하고 이후 진실을 알게 됐을 땐 그 사실에 대한 죄책감에 몸서리치게 만든다.

오이카와가 입으로 긴 숨을 내쉬었다. 탁한 분노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진실을 알아버린 이상 센터의 손에서 더 놀아날 생각은 없다. 그들은 일반인들보다 훨씬 강한 신체조건과 정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센터에서 늘 가혹할 정도의 훈련을 받아댔으니. 이 ‘특별함’은 그들을 무리 없이 사회에 녹아들게 할 수 있을 터였다. 아귀가 맞는 사고 회로들을 뿌듯하게 여기던 오이카와가 내일을 잠시 계획했다. 우선 E들을 부를 생각이었다. 오래된 녹음기가 얼마나 더 이야기를 재생할 수 있을지 몰랐으므로.


- 어떻게 됐어.
- 해결됐어.
- 다른 곳은?
- 마찬가지.


그들이 아는 센터보다 더 많은 곳의 센터가 있다는 건 카게야마가 아주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알아낸 사실이었다. 그는 센터의 개수와 위치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센터가 더 있다면 그곳에까지 연락이 닿아야 계획이 완벽하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이곳 센터 측에서도 굳이 다른 센터들의 존재를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오히려 이곳에서 능력이 출중한 이들을 뽑아 다른 지역 센터의 사람들과 교류하게 했었기에 그쪽으로의 접근은 어렵지 않은 편이었다. 오이카와는 기를 쓰고 정기 교류 때의 일원이 되어야만 했다. 화상으로 주고받는 얘기들은 녹화되고 있을 게 뻔해 반드시 면대면으로 그들과 만나야 하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였다. 그는 첫 번째 만남에서 녹음기를 재생시켰고 두 번째 만남에서 확답을 얻어냈다. 그들은 그가 만나지 못했던 먼 센터의 사람들에게도 이야기를 이어 주었다. 오이카와가 감춰지지 않는 웃음을 오랜만에 크게 터뜨렸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물밑작업이 각 센터를 거미줄처럼 연결해낸 순간이었다.


- 동요 없게 해. 세부 계획은 우리만 알고 있을 거다.
- 큰 계획은?
- 알려주지 마. 전날에 얘기할 거야. 너무 많이 알고 있으면 어쨌든 잡음이 흘러나올 가능성이 크니까.
- 그날 현장 가는 사람들은?
- 아예 말 안 예정이야. 현장 일 처리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연락하면 돼.


밥 많이 먹어. E들에게 특히 힘든 일이 될 거라는 사실을 오이카와는 그 말로써 넌지시 암시했다. 방 안에 모인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각각 맞출 수 있는 최대 인원수는 달라도 기본적으로 모두 강한 이들이었다. 거기다 센터 내 A, M 포지션들의 수도 결국 E들을 기준으로 맞춰져 있기에 크게 걱정할 일은 없을 터였다.

위험의 크기 치고 순조로운 진행이었다.


- 시작하자.


일이 제대로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건 눈을 감았을 바로 그때였다. 시작할 때 왜인지 불안한 예감에 E들끼리의 연락 수단을 대신해 M 한 명씩을 동시에 ‘보기’로 했었다. 그런데 말짱하고 또렷해야 할 그 M의 시선이 정신없이 흔들리는 것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눈을 빠르게 네 번 깜빡여. 혹시나 하고 지시한 내용이 그의 시야에 가득했다.


- 없어, 오이카와! 없어!


그가 몸을 숨긴 방으로 몇 명의 사람들이 뛰쳐 들어왔다. 다섯. 그러나 이들을 ‘봐야’ 했던 E의 수는 셋. 최소 세 명의 E가 갑자기 사라졌다. 홍차색 눈동자 가득 혼란이 서렸다. 나가자. 나가서 도움을 요청하자. 그러나 그가 문을 열고 나가자 마주한 풍경은 더 이해할 수 없을 만한 것이었다.


- 이게 어떻게…… 이게, 왜……!


사라진 E가 ‘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상행동을 하고 있었다. 벽에 머리를 쿵쿵 박거나 발을 앞뒤로 움직이는 등 꼭 약에 취한 것만 같은 행동들을. 자의가 아니라면 타의다. 그리고 그 타의가 E에 의한 것이라면, 이 행위는 E의 몸에 어마어마한 무리를 주고 있을 것이다. 어지러워 현실을 잃을 것 같은 머리에 오이카와가 주먹을 꽉 쥐었다. 짧은 손톱이 네 개 전부 손바닥을 파고들고서야 정신이 든다. 식은 화산처럼 언제 뜨거웠냐는 듯 차가워진 눈으로 여기 있는 이들을 훑었다. 개인플레이는 무리였다. 연습한 적도 없고 효율적이지도 않았다. 버겁더라도 소재 파악이 되는 E들이 ‘보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이카와가 방을 뛰쳐나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스가와라에게로 향했다.


- 두 명?
- 연결돼있는 애들 몇 명 이상 행동 보여. (E는) 최소 세 명.


이상 행동을 보이는 이들을 전부 기절시키고 갈 순 없었다. 의식을 잃은 그들을 지키게 된다면 최소 여섯 명 정도만큼의 인원을 쓸 수 없게 된다. 그건 오이카와로선 놓칠 수 없는 큰 숫자였다.


- 가능할 것 같아?
- 세 명은 안 돼. 그리고 일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그들을 ‘보고’ 있는 E에게서 주도권을 빼앗아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기본적으로 공격적인 플레이가 가능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스가와라의 플레이는 공격적이라기보단 다채롭고 견고했다. 게다가 만일 그가 상대의 주도권을 빼앗을 수 있다 해도 그런 상대가 세 명이나 된다면 그건 확실히 무리였다. 거기다 적지 않은 시간이 든다는 점에서도 너무 소모적인 짓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와중에도 시간이 간다. 오이카와가 아픈 머리를 손날로 꾹꾹 눌렀다. 있다. 분명 친한 이들 중에 공격적인 플레이 방식을 쓰는 사람이 있었는데…….


- 아! 세미! 가까이에 있었지?
- 응. 나 미리 하고 있을 테니까 니시노야까지 좀 부탁해.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오이카와의 발걸음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스가와라의 손이 여전히 이상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소년의 팔에 닿았다. 금세 소년의 어지러운 시야가 그의 눈앞에 가득 차올랐다. 그가 잡으려고 하는 정신과, 연결된 E에게서 오는 명령이 서로 맞부딪혔다. 꽹과리를 치는 것마냥 시끄러운 소리가 머릴 울렸다. 꽝! 꽝! 매혹적인 명령에 홀려버릴 것 같아 나머지 손을 이로 물었다. 흰 피부가 더 하얗게 질렸다. 상대와의 연결을 끊고 나니 드러난 그의 목덜미가 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세미는 그가 두 번째 소년의 팔을 잡을 때쯤 도착했다. 가벼운 눈인사만을 남긴 채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센터를 뒤집을 기회는 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이후 니시노야가 도착했음을 느낀 건 어지러운 시야와 진짜 저 사이에 생긴 두꺼운 막 같은 것을 알아차렸을 때였다. E가 다른 E의 명령에서 주도권을 뺏으려면 그에게 정신이 동화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G는 허상을 허상으로만 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스가와라가 불러 달라고 부탁한 니시노야는 유능한 G였다. E 셋 정도는 빠듯하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가 없었더라면 행위가 어떻게 흘러갔을지 확실히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도움과 함께 가장 먼저 세미, 곧이어 스가와라, 마지막으로 오이카와가 일을 끝마쳤다. 열이 끓는 몸을 땅에 뉜 채 서로를 바라본 그들은 꽤 어려운 일에 성공했음에도 차마 맘 놓고 웃을 수 없었다. 제정신을 유지하려고 깨문 한쪽 팔이 전부들 얼룩덜룩했기 때문에.


- 왜 이렇게까지 안 되지?! 모니와! 연락은?
- ……오, 오이카와.
- ……?
- ……겐고가 죽었어.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의심은 모니와와 연결된 E가 죽고서야 이유와 맞물렸다. 오이카와의 등이 축축하게 젖었다. A를, M을 보낸 자리마다 폭탄이 터지고 가스가 흘러나왔다. 계획이 샌 것이다. 전방을 맡은 이들의 부상은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E라면, 게다가 그것이 심지어 죽음이라면, 이야기가 심각해진다. E들은 기본적으로 A와 M의 보호 안에서 ‘보게’ 된다. 모니와가 ‘보고’ 있는 M의 시야가 멀쩡하니, 문제가 생긴 것은 겐고 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독단적인 행동을 했다는 건데. 겐고와는 오이카와와도 몇 번 함께 훈련한 사이였다. 그는 신중한 성격으로, 일을 그르칠 만한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 거짓 정보를 흘렸거나 그를 죽음으로 유인했다.

누가? 대체 누가? 오이카와의 눈동자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 으아악, 제발! 제발!


인간이 진정으로 슬플 때는 가진 슬픔을 표현할 수 없을 때다. 오이카와는 그렇게 생각했다. 흘리던 눈물은 슬퍼서가 아니라 아파서로 변해 버렸다. 그가 존재하는 온 천지가 지독한 냄새와 애끓는 소리들로 가득했다. 피 냄새는 이미 익숙해져 의식하지 않으면 난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힘들다. 그냥 힘이 들었다. 오이카와의 행위 하나하나에 부여할 의미같은 건 없었다. 하—아. 숨을 나눠 쉬었다. 두 마디 사이 공백에서, 그는 아직 살아 있었다. 그게 다였다. 거침없이 걸어 나가던 그가 이내 탁해진 눈으로 팔을 훑는다. 누군가 모를 E가 죽었다. 더 ‘볼’ 수도 없이 차 있는 시야에 또 급박한 것들이 들어찼다. 와작. 물컹한 살에서 짜고 비린 맛이 났다. 여기는 생지옥이었다.


- 안 돼. 안 돼!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제게서 나온 것인지 어디선가 제게로 들어온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냥, 그냥 그는 머리가 아팠을 뿐이다. 뇌가 조각조각 분리되어 각각 다른 명령을 내리고 있는 듯한 고통을 느꼈을 뿐이다. 정신을 붙잡기 위해 다시 팔을 입에 물었다. 아득한 수렁에 처박힐 듯한 느낌이 들면 그 팔을 아플 만큼 세게 씹었다. 피가 배어 나오면 다른 부분을 물었고, 그곳도 피가 나오면 또 다른 부분을 물었다. 종국에 그의 왼팔이 피와 멍들로 흉하게 얼룩덜룩 물들었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끊임없이 머리가 아프다. 당장이라도 잠들고 싶었다. 눈물을 줄줄 흘리고 아픈 머리의 머리칼을 쥐 뜯으면서도 그는 정신을 잡아야만 했다. 그 자리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 아아악!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이들을 ‘보았다’. 죽을 만큼의 노력에도 죽음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분명 슬픈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의 죽음으로 연결이 하나 둘 끊어질수록 정신이 말짱해지는 걸 느꼈다. 숨 쉴 구멍이 생겨나고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숨을 쉰다는 건 간절함이었다. 너무도 간절하게 살고 싶었고, 딱 그만큼 죽고 싶었다. 모든 게 끝난다면 일 년 내내 해가 비친다는 곳으로 가리라고 마음먹었다. 지독한 밤을 떠나 낮을 맞이하리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미 밤에 얼룩진 몸에게 태양이란 지나치게 밝은 존재였던 것일까.


토비오.


카게야마 토비오.


- 카게야마가 안 보여!
- 츠키시마! 너 혹시……!
- 연결 끊겼습니다.


왜 네 이름이 여기서 들려?

아픈 감각은 모두 잊히고 선뜩한 기시감이 몸을 휘감았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슬펐다.


내 수많은 시뮬레이션 중에 꼭 너를 잃는 것만큼이 없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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