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오이카게] 밤의 강에는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10


정오 글


***


오이카와 토오루가 죽을 뻔했다.

은밀하게 배달된 봉투를 열면 적혀 있는 단조로운 말의 결론이었다. 몇 마디 문장이지만 그 안에 담긴 말은 꽤나 무거운 의미를 담고 있어서, 한참을 고민하던 그들은 봉투를 몇 개 더 만들기로 했다. 타 지역에 있는 조직들에까지 그것을 보낼 예정이었다. 일단은 교류가 있었던 곳만. 오이카와가 봉투 겉면에 제 이름을 적었다. 손을 갖다 댄 채 만년필에 눌린 부분에 힘을 집중한다. 그가 가진 힘이 글자 안으로 스며드는 게 느껴진다. 이를 확인하지 않고 봉투를 열려 한다면 봉투는 순식간에 타버려 까만 재만을 맞이하게 될 테였다.


“이것도 내가 해야 하는 거야?!”
“입 다물어. 덕분에 사흘 동안 세 시간도 못 잤으니까.”


피곤이 잔뜩 묻은 얼굴의 이와이즈미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이와이즈미는 몇 겹은 더 삼엄해진 경계를 정신없이 담당해야 했다. 거기다 오이카와가 빠진 만큼 더 바빠진 대외적 일들도. 차마 계속 투덜거릴 수 없어 오이카와는 만년필을 집어 들고 질 좋은 종이 뒷면에 이름들을 하나하나 써넣기 시작했다.

시라토리자와, 시라부 켄지로.
카라스노, 스가와라 코우시.
다테, 모니와 카나메.
죠젠지, 후타마타 타케하루.


“아무래도 이게 낫겠지.”


무리하지 마세요. 점심때나 일어나겠다는 약속과 달리 새벽이 스러지자마자 셔츠를 입던 오이카와의 등에다 대고 카게야마는 그렇게 말했다. 체력을 적게 써야 한다면 역시 같은 포지션인 E를 위한 흔적을 남기는 쪽이 낫다. 상성이 잘 맞은 흔적은 아무래도 그쪽에서 확인 절차를 거치기도 쉽고. 오이카와가 봉투 두 개를 더 집어 들었다. 떨어지는 잉크를 휴지 위에 한 번 닦아내고 다시 글자를 적는다.

네코마, 코즈메 켄마.
후쿠로다니, 아카아시 케이지.


“이 일로 만나지 않는 게 최고의 희소식이 되겠지만.”


찝찝한 기운이 몸을 파고들었다. 아오바죠사이는 지금 전래 없을 정도로 예민하게 수비에 공을 들이는 중이었다. 관습상 비상상황이 닥칠 경우 그들의 주 구성원들 일곱이 돌아가며 밤을 지휘했지만 지금은 더 특수한 상황. 두 명씩 짝을 지어 밤을 주시하기로 했다. 이 모든 일이 오이카와의 안위를 위함이었으니 오이카와는 제외하고.


“그 새끼들 어딨어.”


쾅. 오이카와가 팔랑거리는 종이 몇 조각에서 났다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와 함께 봉투를 내려놓았다. 대충 던져놨던 넥타이를 주워 다시 목에 감았다. 무심코 이와이즈미와 마츠카와를 부르려다가 서류에 휘말려 정신없는 모습을 쳐다보곤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딨겠어, 지하에 뒀지. 오이카와가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하나마키의 머리를 괜히 한 번 쓰다듬은 뒤 발을 옮겼다. 유광의 검은 구두가 사신의 부름마냥 복도를 움직이고 있었다. 이 건물 아래선 잘 쓸 일이 없던 휴대폰을 꺼내 든다. 킨다이치와 쿠니미 중 누구에게 전화를 걸까 고민하다 스크롤을 다시 끌어올렸다.


“내 목을 노려놓고 이렇게 다정한 애들을 데리고 가라고? 수지가 안 맞지, 암.”


두 번의 수화음이 울리고 상대가 응답한다. 목소리엔 미미한 한숨이 섞여 있었다. 오이카와의 입꼬리가 스멀스멀 위로 올라갔다. 역시, 눈치가 빠르다.


“지하로 와야겠어.”
[저한테 굳이 연락을 하셨다는 건, 있죠 오이카와 선배. 진짜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쿄타니 데리고 와. 그리고 지금은,”
[사私보다는 공公이라는 말씀이시죠? 압니다 보스.]


오랜만에 들어보는 두 글자에 쯧 혀를 찼다. 만족스럽다는 반응이었다. 끊긴 전화기를 다시 주머니 안에 밀어 넣은 오이카와가 마침 도착해 있던 엘리베이터를 잡아 탔다. 근래엔 굳이 제가 누를 일이 없었던 B4 버튼을 누른다. 투명한 유리에 비친 얼굴이 고민을 담았다.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그가 미리 짜 놓은 시나리오에 허점이 생겼다. 주름이 잡힌 미간을 검지로 꾹꾹 누른다.


“……또 싸웠어?”
“아뇨. 그게, 아.”


불퉁한 표정의 쿄타니와, 그와 닿은 팔을 질색하며 떼어내는 야하바. 올라가서 싸워, 올라가서. 알았지? 오이카와가 손을 들어 쿄타니의 등과 야하바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는 그의 얼굴이 오이카와와 함께 발을 옮길수록 서서히 굳어갔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미 다 전달돼 있었으니, …….

말이 없어진 그들을 맞이라도 하듯 차례로 켜지는 복도의 불빛이 희다. 쿄타니가 오이카와를 잠깐 쳐다보았다. 그는 검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오늘 그가 봐야 할 피의 양이 상당할 거라는 증거였다. 챙겼던 총을 야하바에게 건넸다. 야하바는 아무 말 없이 그것을 웃옷 사이에 밀어 넣었다. 복도 끝방에 다다르자 보초 둘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표했다. 굳게 닫힌 문 안쪽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주머니 안에 손을 넣어 인이어의 연결을 끊는다. 여기 있는 동안만큼은 카게야마는 최대한 좋은 것, 행복한 것만을 접해야 한다. 그래야……. 구겨진 인상에 코 위로 작은 주름이 잡혔다.


“안녕?”
“……!”
“하고 인사라도 할 줄 알았어? 맞아. 사실 보통은 그래, 내가. 안 궁금할 거야, 그 정도야 잘 알고 있겠지. 내 목을 노렸는데. 응?”


내가 호의를 베풀어준 누구를 통해 네 귀에 그런 말이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사실은 별로 그런 걸 가지고 너랑 거래할 생각은 없어. 그러니 그런 생각은 지금 없애줬으면 좋겠어? 놓아준 새끼들 하나하나 족쳐보면 금방 꼬리가 잡힐 텐데. 안 그래? 다정한 음성이 칼날을 머금었다. 오이카와가 보란 듯이 인상을 썼다. 부들부들 떨고 있어야 기분이라도 좀 나아질 텐데, 남자는 아주 패닉은 아닌 듯했다. 짜증이 봄날 개미처럼 우글우글 어딘가를 뚫고 올라온다.


“왜 이렇게 멀쩡해 보여?”


말이 떨어지자마자 야하바의 발이 기다렸다는 것처럼 남자의 등을 걷어찼다. 순간적으로 꿇린 무릎에서 큰 소리가 났다. 아픈지 묶인 손을 빼내려 용을 쓴다. 일말의 연민도 없는 표정의 오이카와가 발을 들어 그런 남자의 턱을 들어 올렸다. 퍽. 간결한 소리와 함께 그의 고개가 떨어졌다. 오이카와의 눈썹도 아래로 삐끗 떨어진다. 반짝거렸던 구두 위로는 남자의 턱이 남긴 둥근 자국만이 희게 남았다. 푹. 그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챈 야하바의 까딱인 고개와 그를 쳐다본 뒤 남자의 등허리로 무언가를 찔러 넣은 쿄타니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뭐해? 보스가 고개 떨궈도 된다는 말은 안 했잖아. 은색 눈은 아직 해가 지지 않았음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탁하다. 오이카와가 토닥토닥 허리를 두드린다.


“너무 다정하잖아.”
“…….”


쿄타니가 들고 있던 두 뼘쯤 되는 칼을 야하바에게 건넸다. 오늘 이걸 쓸 일은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오이카와가 원하는 것을 완벽히 이해했다. 더 잔혹하고 더 끈질기게. 어깨를 푼다.


“그래. 그렇게.”


남자는 작은 숨만을 헐떡이고 있었다. 허리에 무언가가 박힌 고통이 끔찍했지만, 소리를 지르면 죽을 것이다. 더듬더듬 오이카와의 구두 위에 고개를 올렸다. 그것이 사는 길이다. 그는 살아야 했다. 언제나 삶이 끝으로 치달을 때면 살아야 할 강렬한 이유들이 떠오른다.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남자는. 야하바가 반어적인 연민을 깐 눈으로 그를 훑었다. 남자는 잠깐 마주친 눈동자에 얼른 눈을 아래로 깔았다. 핏빛 눈동자는 오늘 그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는지를 여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낯짝이다.”


다시 퍽. 구둣굽에 이마가 파였다. 입술을 와드득 씹었다. 오이카와의 빛나는 구두 위로 끈적한 핏방울이 툭 툭 떨어졌다. 두려움은 위압감에 버무려져 끝을 모르고 크기를 키웠어야만 했다. 터질 듯 붉게 물든 눈을 물끄러미 그가 응시했다.

왜 아직 안 울어?

잔인한 말에 그의 몸이 경련했다. 상황 파악을 한 머리와 꼿꼿이 지켜온 자존심이 반대로 비틀렸다. 오이카와의 몸을 타고 아우라가 검게 흘렀다. 그는 순간 잘못 생각했음을 깨닫는다. 고개를 조아릴 걸. 후회한다 해도 이미 오른쪽 눈앞에 있는 뾰족한 물체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럼 내가 울게 해 줄게.”


겁이 난다. 몸부림치는 남자의 모습은 끝까지 추잡했다. 여전히 제가 한 당의 중요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다. 본능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혀 마구 고개를 흔들고 팔을 당겼다. 눈을 감고 힘을 주었다. 오래되어 탁한 것만을 좇던 눈. 오이카와의 목소리는 미묘한 유행가의 노랫말처럼 사근거린다. 흑백 영화의 독백처럼, 사제가 마를 쫓을 때 쓰는 단어처럼 이질적이다. 남자의 몸뚱이는 쿄타니의 발길질 몇 번에 움찔 멈추고야 만다.


“안 뜰래?”


민감해진 청각으로 드드득 칼날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늘 주머니에 꽂아두고 다니는 커터칼은 이럴 때 편하다. 모르긴 몰라도 눈꺼풀 정도야 썰지. 쿄타니가 처음으로 꺼낸 말에 힉, 남자가 황급히 눈을 떴다. 앞이 흐리다. 방울져 떨어지는 눈물이 묵직하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사장님, 저 살려주세요. 제가 아닙니다. 배후를 밝힐게요! 저희 당과도 깊은 연관이……


“부탁할게?”


송곳이 박힌 오른쪽 눈을 붙잡고 몸을 뒤트는 남자에게서 눈을 돌리곤 싱긋, 오늘 가장 싱그러운 웃음을 내놓았다. 흘리듯 쳐다본 방 안엔 겁에 질려 눈물을 떨구며 고개를 조아리는 이들이 가득하다. 이게 다 나를 죽이려 온 거란 말이지? 속으로 생각한 뒤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사랑하는 것만 봐야 할 참이었다. 문을 닫으라 명령하려는데 “보스.” 야하바가 그를 불렀다.


“……?”


좋은 것만 누리세요. 말과 함께 새것 냄새가 나는 흰 구두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는 끼고 있던 장갑을 벗은 채 맨손으로 그것을 들고 있었다.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견고하게 짜인, 신뢰를 기반으로 돌아가는 조직. 아오바죠사이. 그러나 오직 신뢰만이었다면 유지할 수 없었을 목숨들. 깊은 사랑과 애정이 야하바의 목소리에서 듬뿍 묻어났다.


“어쩌지? 매번 안 좋은 것만 보게 해서.”


차가운 손바닥이 야하바의 뺨을 감쌌다. 그럴 리 없겠지만,


“다치지 마.”


입술을 바싹 붙여 말하는 터에 한 걸음 뒤에 서 있던 쿄타니가 움찔거렸다. 그에게도 손을 흔들어준다. 쿄타니는 제게 그다지 큰 애정을 가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럴 때 고개를 숙일 줄은 알았다. 그건 그가 그를 대우하는 만큼 존재하는 연결고리의 반증이었다. 악문 이가 갈렸다. 사랑하는 것들 전부와 가장 안전한 공간에 머문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모두가 강하고 그래서 서로를 지킬 수 있는 것. 오이카와가 언제고 꿈꾸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나날들. 기껏 지금에 와서야 이루어진 행복을 무언가가 갉아먹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죽음에 관한 공포는 그에게 그다지 대단치 않았다. 센터에서, 임무를 처리하면서 한 발짝이면 맞이할 수 있던 게 죽음이었으므로. 깊은 외상도, 그가 능력을 쓰는 존재인 탓에 치명적이었던 정신 공격도, 이미 모두 경험해 본 일이었다. 차이를 묻는다면 더 크고 뚜렷해진 행복 정도일까. 사랑하는 것이 많아진다는 건, 감정의 크기가 자꾸만 몸을 부풀린다는 건, 확실히 불리하다. 센터에 있을 때와 달라지지 않은 의견이었다. 다만 오이카와 토오루는 이제 알고 있을 뿐이었다. 있어서 두렵고 불안한 것보다, 없어서 그렇지 않은 게 훨씬 고통스럽다는 것을.


“오셨습니까.”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카게야마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오이카와의 발걸음은 죽죽 늘어지고 있었다. 침대를 누른 왼손에 힘이 실렸다. 그에게서 비릿한 쇠 냄새가 난다. 오이카와는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가 오래 피 향을 맡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털고 들어올 만한 약간의 여유도 사라져 있었다는 것도.


“영화 같이, 아.”
“……. “
“그럼 레스토랑이…… 아.”


그는 삐걱거리는 오래된 인형 같았다. 영화를 함께 보자는 말도 레스토랑을 가자는 말도 서술어를 가지지 못한 채 부서졌다. 지금 상태로 밖에 나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멍하니 카게야마를 응시하던 눈과 급작스레 고개를 든 눈이 한데 만나 뒤섞였다. 다자색과 밤색이 만나면 어떤 빛깔이 될까. 오이카와의 입술이 삐그덕 호선을 그렸다. 검정. 모든 과학적 원리를 무시하고 그것은 검정이다. 너와 나는 그 아래서만 몸을 감출 수 있다.

새벽보다 더 어두운 새벽을, 밤보다 더 어두운 밤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빛나 보일 수 있는 작은 별쯤 되면 괜찮아질까. 집중해야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대개 속눈썹에 반사된 달빛이라 치부할 게 뻔한 아주 작은 점 한 조각이 된다면.


“파스타 먹을래?”
“…….”


오이카와는 처음 보는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조금 전 그토록 고통스러운 얼굴을 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멀쩡한 모습이었다. 카게야마는 대답 없이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했다. 허무하리만치 가볍게 당한 사고가 그의 머리를 온통 헤집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 제게 함께 영화를 볼 것을 요청했다는 것도, 레스토랑에 갈 것을 요청했다는 것도.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불가능하다는 걸, 바로 그다음에 오이카와가 깨달았다는 것도.


“파스타 좋아해?”
“네, 뭐…….”
“그럼 됐어.”


부엌인가?

생각했던 것보단 조그만 공간이었다. 오이카와가 자신 있게 찬장을 뒤졌다. 잠깐 고민하더니 금세 문을 닫고 냉장고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카게야마의 눈동자가 그의 동선을 따라 또르르 굴러갔다. 그의 행위는 그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쉼과 동시에 잠깐 멎었다. 다시 냉장고를 뒤적거린다. 채소들과 각종 그릇을 치워 보던 것도 잠시 미세하게 고개가 떨어졌다. 냉장고 선반을 잡은 그의 손이 희게 질려 있었다.


“토비오.”
“네.”
“파스타 면이 안 보이는데 우리…….”


말이 멎었다. 입술을 세게 물었다 놓은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아주 익숙해서 눈에 훤히 그려질 것만 같은, 거의 사실일 게 뻔한 짐작을.


“오이카와 상.”
“……,”
“하이라이스 먹어요.”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에게 다가섰다. 투명한 냄비 안에 담긴 하이라이스 소스를 잠깐 쳐다본 뒤 입술을 열었다. 오이카와는 움직이지 않았다. 분노로 일렁이는 가슴은 가라앉히지 않으면 위험하다. 왜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 게 익숙한 존재가 됐을까? 누구도 답을 줄 수 없는 질문이 그의 입술을 타고서 맴맴 움직였다.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서 평범해질 수 없다는 건 잔혹한 사실이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일생에 단 한 번도 당할 일이 없을 목숨에 대한 위협을 밥 먹듯 받아 왔다. 아오바죠사이 수장이라는 자리는 몸을 숨기고 버티며, 때론 동료들의 목숨까지 짓밟아가며 올라온 곳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오이카와의 낯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위협을 당한 뒤 가지고 싶었던 일상적인 나날들은 역으로 그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일이 될 테였다. 그는 한동안 홀로 밖으로 나설 수 없다. 겨우 마음의 끈을 붙잡고 카게야마와 파스타라도 먹으러 왔건만, 이 역시나 녹록지 않다. 방향을 알 수 없는 화가 어디론가 자꾸만 튕겨 나가고 싶어 했다.


“저 이거 완전 좋아합니다. 괜찮으시면 먹어요.”
“…….”


선택이 선택을 낳는다. 오이카와는 확실한 편이 좋았다. 확실히 카게야마를 살리는 게 좋았고 확실히 그가 안전한 편이 좋았다. 가정이나 예외 같은 건 존재할 수 없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로 인해 걸어와야 했던 길은 온통 가시밭이었던 데다가 사랑의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거친 황무지였기에. 오이카와는 대답 없이 냄비에 불을 올렸다. 너의 조그만 배려가 온전히 내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게 아프다. 네 목적과 모든 행위의 소실점이 어디인지를 알기 때문에 더더욱 아프다.


“고마워.”


목소리가 갈라졌다. 다시 가다듬었다. 터질 것 같은 표정을 오이카와가 갈무리할 때까지 카게야마는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여전히 철저한 선이 둘 사이를 그에게 재인식시키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오이카와를 사랑하지 않는 카게야마의 최선이었다. 가장 아픈 순간을 차마 눈으로 살필 수 없고 가장 아파하는 존재를 차마 양 팔로 끌어안을 수 없는. 최선.


“혹시나 제가 오이카와상을 재촉하고 있었다면, 그러지 않겠습니다.”
“너 안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
“먹고 나면 샤워를 해요. 방에 빔 프로젝터 있던데, 샤워를 하고 나면 그걸로 영화를 봐요. 물론, 괜찮으시다면.”
“……당연히 괜찮아.”
“그리고 내일은 쉬세요. 왜냐하면……,”


카게야마가 입을 달싹거리다 아주 잠깐 머뭇하는 게 느껴졌다. 내가 여기까지를 당신에게 열어 내보여도 괜찮을까, 잔 고뇌를 한다. 안다. 이미 오이카와가 제 모든 부분을 샅샅이 가져간 적이 있었음을. 그럼에도 말에 고민을 싣는 것은 이 말을 꺼낸다는 게 그에게 어떤 감정을 일으킬지도 알기 때문이었다.

……알지만. 더 재야 할까? 무엇을? 더 고민해야 할까? 왜?

웅얼웅얼. 낮은 목소리가 주문처럼 단어들을 중얼거렸다.


—오이카와 상은 지금 가장 안전한 곳에 계시니까.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6/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